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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다고? (Man-Up?)
파케하와 마오리 남성성에 관한 사회역사적 탐구 (A Socio-historical Examination of Pakeha and Maori Masculinities)
Richard Pringle
최근 강의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혹은 위대한 뉴질랜더의 이름들을 나열해보라고 요청했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많은 이름이 거론되었다: Ernest Rutherford, Peter Blake, Edmund Hillary, Richie McCaw, David Lange, Helen Clark, Jonah Lomu, Colin Meads, Michael Joseph Savage, Peter Jackson, Timm Finn 그리고 Charles Upham. 학생들은 금세 그들 리스트의 압도적 다수가 파케하 남성임을 알아차렸다. 추가 토론 시간에 Apirana Ngata, Hone Heke 그리고 Kate Sheppard도 추가되었다.
수업은 이후 그 중 가장 존경받는 혹은 위대한 뉴질랜더를 뽑는 시간을 가졌다. 어려운 과제였지만 궁극적으로 3명으로 압축되었다: Edmund Hillary, Peter Blake 그리고 Richie McCaw. 선택 이유를 위해 학생들은 이 인물들의 업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질과 가치에 관해 토론했다. 그들이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었는가에 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용감하고, 열심히 일하고, 실용적이고, 기술이 있고, 성공적이고, 단호하고, 강하고, 현실적이고, 역경을 이겨낼 줄 알고, 가장 중요하게, 겸손하다. 그들은 업적을 떠나 그들이 뉴질랜드의 (지배적인) 이상과 가치를 잘 반영했기 때문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로 선정되었다고 학생들은 결론지었다.
위 마지막 포인트와 관련 나는 Hillary, Blake 그리고 McCaw를 위해 많은 서술어를 인용했다: Hillary는 ‘뉴질랜드 남자다움의 전형’이고 McCaw는 ‘뉴질랜드 영웅으로서 ‘이상적인 국가 인물’을 상징하고 있다. Helen Clark은 Blake를 ‘국가적 영웅’이라고 칭하며 그의 용기, 스태미너, 끈기, 겸손을 칭송하며 그가 한마디로 ‘준수한 인간’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뉴질랜더들이 이 인물들을 존경하는 이유가 그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지배적 형식의 남성성 (masculinity)의 전형으로 간주하기 때문임을 주장하기 위해 이 서술어들을 인용했다.
이 지배적 형식의 남성성은 남성과 여성 간, 서로 다른 에스닉 그룹의 남자들 간 그리고 서로 다른 성적 정체성을 가진 남자들 간의 불공평함과 연계되어 있다. 이 남성성 형식 때문에 여성, 마오리 혹은 다른 에스닉 그룹 출신자들의 이름이 학생들의 리스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이 이상화된 남성성 형식은 백인 남성에게 사회적 유리함을 제공하는 권력의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다.
이글에서 나는 어떻게 특정 남성성의 표현과 형식들이 지배적으로 되었으며 어떻게 그것들이 현대 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 특히 성별/에스닉 관계와 남성성의 수행 - 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남성성들이 어떻게 연구되어왔고 이론화됐는지를 서술하겠다. 그 후 파케하와 마오리 남성과 관련하여 남성성의 역사적 형성에 대해 논하겠다.
남성성의 이론화와 연구 (Theorising and Examining Masculinities)
어떻게 남성성을 이론화하고 연구할 것이냐는 문제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남성성(masculinity)’은 논란이 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남성성에 대한 이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고 다양한 문화와 환경에서 다르게 이루어지며 복합적인 사회역사적 구성물로 간주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여성들도 ‘남성성’을 수행할 수 있고 하기도 하지만 이 용어는 ‘남성에게 해당하는 사회적 구성물’로 전형적으로 정의된다. 이와 관련하여 남성성은 남성이 자기가 남자답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방식 혹은 남성에게 딸린 복합적 의미들로 묘사됐다. 남성성의 표현은 주로 남성을 여성으로부터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인정되는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 행동거지 (가령 다리를 벌리고 앉는 행위) 혹은 강함(toughness)과 같은 특정 태도 혹은 가치들을 보여주는 것.
남성과 남성성 연구에 관한 관심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페미니스트 연구로부터 발전되었다. 따라서 남성성에 관한 연구는 성차별과 이성애 규범성이 여성과 비이성애자들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과 연계되어 시작되었다. 또한, 남성성과 남성의 건강/행복 간의 관계에 관해서도 관심이 증가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경우 남성은 여성보다 3배 이상 많이 고의적 부상과 자살로 죽는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 대부분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희생자이고; 술과 마약 문제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 도박중독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여성보다 평균 6년 짧게 산다. 이 같은 ‘남성적’ 문제들에 대한 인지는 많은 사회학자로 하여금 ‘생물학적 남성이 사회적으로 상호교류하는 남자로 변모’하는 과정에 관해 연구하게 만들었다.
남성성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관점은 ‘패권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개념은 Robert Connell과 그 동료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예를 들어 Carrigan, Connell 그리고 Lee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패권적 남성성과 다양한 하위 종속 남성성들 간의 구분이 핵심이다’라고 주장한다. 남성성의 패권적 형식은 특정 상황에서 지배적이고 가장 큰 존경을 획득한 남성성을 말한다.
Connell은 패권 개념을 Antonio Gramsci로부터 인용한다; 그가 말한 바로는 패권은 지배 그룹 혹은 계급이 이데올로기적 관행과 믿음을 통해서 하위 그룹에 대한 문화적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방식이다. Gramsci는 상호 연결된 사고의 종합체로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지배계급으로부터 출현하게 되고 물리적 힘보다는 동의라는 수단을 통해서 권력 혹은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Connell은 이 이론에 기초하여 이데올로기로서 패권적 남성성은 남성성 수행에서 지배적 방식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 방식들에 동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패권 혹은 사회 문화적 지배를 유지하는 과정은 복합적이고 타협의 과정을 수반한다. 따라서 남성성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된다.
뉴질랜드의 패권적 남성성은 역사적으로 이상적 남성을 실용적이고, 강하고, 끈질기고, 기술이 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적이고 아는 게 많은 남자로 묘사해 왔다. 이 남성성 이데올로기는 남자들은 사회적 리더라는 생각을 보편화시키면서 왜 남성이 정치, 비즈니스, 교육, 종교와 스포츠를 지배해 왔는지를 설명한다;이 지배 과정은 남성성을 이 영역들에서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기술 및 자질들과 연결하는 가정(assumpt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역으로 패권적 남성성의 작동은 여성들이 이 영역들에서 지도자가 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고 때로 여성은 적극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심지어 입장이 거부(예, 종교적 장소, 군대 지휘관 자리 그리고 다양한 스포츠)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Connell은 패권적 남성성을 가부장제의 적법성을 확인해 주는 남성성의 문화적으로 강화된 형식으로 정의한다. Connell에게 ‘가부장제(patriarchy)’는 남성 전반이 하위에 종속된 여성들로부터 이득 - Connell은 ‘가부장적 배당(patriarchal dividend)’이라고 표현을 쓴다 - 을 취하는 젠더 관계의 시스템이다. 남성이 가부장적 젠더 관계로부터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 물론 남성들에게 이 구조와 연관된 비용이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젊은 남성들의 높은 위험이 따르는 행동은 그들을 조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심각한 부상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남성성의 패권적 형식은 단지 남성과 여성의 분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계층을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처럼’ 보이는 남성은 남성 세계 순위에서 밀려날 것을 각오해야 하고 동성애 남성성은 이성애 형식에 종속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게이로 ‘coming out’하는 것이 힘든 결정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갈만하다.
패권적 남성성이 유용한 이론적 도구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Hawson은 패권적 남성성과 남성성의 ‘실질적 행위(material practices)’사이의 명백한 틈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이는 권력을 가진 많은 남성 (가령 John Key)이 이 패권적 남성성의 징표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다른 비판자들은 패권적 남성성 개념은 제2 물결 페미니즘 운동 당시에 개발되었기에 이 생각은 현대 젠더 관계와 연관된 복잡한 역동성과 21세기에 증가하는 성적특질, ethnicities 그리고 ‘유동적(fluid)’ 정체성의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비판을 고려하여 많은 성 연구가들은 패권적 남성성을 재구성하고/하거나 교차적(intersectional) 접근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교차적 접근은 ethnicity, 성적특질, 경제적 지위, 나이, 능력과 사회적 상황 등이 남성성의 다른 형식과 관련된 권력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교차적 접근은 마오리 남성의 정체성 감각이 그에게 마오리와 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는 것과 계급, 성적특질 그리고 젠더 간 상호 연결의 복합성은 자신을 게이라고 밝힌 의사가 실업자인 이성애자 남성보다 더 특권적 남성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패권적 남성성 개념과 교차적 접근의 취지 모두를 참고하여 나는 다음 섹션에서 파케하와 마오리 남성성의 사회역사적 발전 과정을 논의할 것이다.
파케하 남성성의 사회역사적 연구 (A Socio-historical Examination of Pakeha Masculinities)
파케하 남성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는 동료의식(mateship), 사회적 독립성, 할 수 있다 자세, 노력 그리고 럭비, 사냥, 도박 그리고 폭음 같은 거칠거나 위험한 레저의 추구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런 이미지들이 증가하는 도시화, 페미니즘 그리고 인구 변화에 따라 위협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초기 식민주의자들은 ‘땅 개척과 … 실용적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산업에 필요한 거친 시골의 “개척자”’ 백인 남성성’과 연결된 국가 정체성 서사를 발전시켰다. 이 서사는 뉴질랜드의 식민화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지만, 식민화의 파괴적 영향들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토지를 개간하는 행위’와 연관된 낭만적 개척자 이미지는 자기 땅을 강탈당한 마오리의 반응 혹은 이 행위로 야기된 환경 문제 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Jock Philips는 그의 획기적인 저서 A Man’s Country? 를 통해 파케하 남성에 대한 영향력 있는 이해는 뉴질랜드 역사의 각기 다른 순간에 출현한 남성스러움에 대한 두 모순된 전통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열심히 일하고, 시골 출신이며, 재치있고, 떠돌아다니고, 술을 많이 마시는 녀석(bloke)인 개척자 남성을 칭송하는 첫 번째 전통 ; 1920년대 뉴질랜드의 증가하는 도시화 시기에 등장한 자기를 강제할 줄 알고 절제하는 가족형 남자를 인정하는 두 번째 전통. Philips는 남성성에 대한 그의 사회 역사는 이미지, 신화 그리고 스테레오타입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개척자 남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설명은 19세기 내내 존재했던 남성과 여성 간 비율의 불균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1861년에 백인 남자 1,000명당 백인 여자는 622명에 불과했고 1874년에는 ‘결혼한 남성’보다 ‘결혼하지 않은 남성’의 숫자가 더 많았다. 이런 사회역사적 환경에서 많은 남성은 퇴근 후 돌아갈 가정이 없어서 다른 남자들로부터 ‘격려와 안식’을 찾게 된다.
이런 연유로 1800년대와 1900년대 초 동료의식은 파케하 남성들 일상생활의 중앙을 차지하게 된다. 시골 지역에서 남자들이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는 곳이면 어디나 이 동료의식이 존재한다. 이들 남성이 하는 일들은 많은 경우 힘든 육체노동 - 채광, 고래잡이, 목장일, 털깎기, 땅개간, 벌채 등 - 이며 이 일들은 거칠고 습기 차고 위험한 환경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육체적 강건함, 용감함, 인내심 그리고 돌파력 같은 자질은 높게 평가된다.
동료의식은 열심히 일하는 것에 의해서 강화될 뿐만 아니라 열심히 노는 것에 의해서도 강화된다; ‘음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남자 공동체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 음주는 규칙적이고 적정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라 남자들 사이의 유대 관계를 강화시킨다는 이유로 술에 완전히 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런 음주와 함께 매춘은 상대적으로 흔했으며 여성들은 남성 소비의 합법적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결혼한 여성 같은 ‘존경할만한’ 여성들은 남자들만의 세계와 유대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동성 사회성(homosociality), 동료의식 그리고 여성 영향으로부터의 격리 등이 파케하 남성성 이데올로기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독신 남성이 많은 상황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새로이 등장하는 문화를 거칠게 하거나 남성화하고 남성들 자체도 남성화하는 구실을 했다. 따라서 뉴질랜드는 ‘남자의 나라(man’s country)’가 되었다. Philips는 뉴질랜드가 진짜로 남자의 나라인지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다. Macdonald는 이와 관련하여 ‘여성의 희소성, 특히 젊은 여성은 이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으로 경제적 힘, 법적 권리, 정치적 위치와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또한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운동은 단지 여성 해방을 실현한다는 의미 외에도 남성에 대해 일정 집단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메커니즘 차원에서도 중요했다.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의 거친 ‘키위 자식(Kiwi bloke)’을 ‘수용할 만한 남성 행위’라는 새로이 정의된 경계 안으로 다시 틀을 짜려는 시도들은 남성성의 패권적 형식들이 도전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이 ‘술꾼(boozer) 대 괜찮은 녀석(decent bloke)’, 떠돌이 개척자 대 문명화된 도시인 그리고 거친 남자 대 가정적 남자 간의 긴장과 타협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며 파케하의 남성성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파케하 남성 스테레오타입이 현대 뉴질랜드 남성성의 가장 보편적 형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문화적 관련성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파케하 남성성의 이미지는 많은 영화와 책들을 통해 홍보(동시에 문제화)되어 왔다; 가령 영화 Sleeping Dogs, Smash Palace, The World’s Fastest Indian과 Everest; 책 A Good Keen Man, Footrot Flats, Man Alone 그리고 John Clarke의 시골 유머와 Sam Hunt의 시 등. 이런 형식의 남성성의 현대 문화 관련성은 아마도 뉴질랜드에서 ‘성 삼위일체(holy trinity)’로 일컬어지는 남성성-스포츠-맥주의 상업적 연결고리에서 가장 잘 반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맥주 회사 Steinlager는 All Blacks를 2020년까지 후원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맥주 광고들은 종종 향수적 이미지(예, Speight’s 와 Southern Man)와 힘든 노동 후 동료 남성들과 맥주를 함께하는 공식을 활용한다. 여성들이 맥주 혹은 스포츠 광고에 등장할 때 그녀들은 종종 전통적 ‘액세서리’ 역할을 하거나 성 상품화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남성성은 여성성과의 격리와 남자다움의 전통적 형식과의 연관을 통해 정의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오래된 신화와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함과 동시에 남성성 수행의 현대적 방식과의 조합형태로 향수적 이미지를 활용한다.
‘대 와인 공황(great wine depression)’으로 알려진 DB Export Dry의 광고는 한 예이다: 비록 현대 도시 남자들은 다양한 트렌디한 카페나 식당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지만 와인마시는 것(여성들이 하는 행위로 묘사)을 거부하고 맥주를 마심으로써 남성성을 보여줄 수 있음을 묘사한다. 이 광고는 ‘삶의 방식의 브랜드화 (lifestyle branding)’를 이용한다. 이 광고는 그럴듯하고 바람직해 보이는 남성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창조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맥주 소비를 통해 유지될 수 있음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강조한다.
Brendan Hokowhitu는 문화적으로 지배적 버전의 남성성은 압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 계급의 남성성은 럭비, 경마 그리고 맥주 같은 전통적 특질들과 여전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중산 그리고 상위계급 뉴질랜드 남자들은 변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오클랜드는 인구의 사회 문화적 다양성 탓에 파케하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 형식은 일부에 의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더 나아가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Philips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있다. 주된 내용은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권력관계의 형성 과정에서 파케하와 마오리가 어떻게 서로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그가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정체성의 현대적 원주민 형식이 식민주의와 관련되어 구성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마오리 남성성의 사회역사적 형성 과정을 알아본다.
신식민주의 시대의 마오리 남성성 (Maori Masculinities in Neocolonial Times)
파케하 사회학자로서 마오리 남성성에 대해 꼭 글을 쓰고 싶었다. 사회 이론가 Michel Foucault는 인문과학이 결과적으로 사회관계를 구분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면서 형성하는 지식을 만드는 능력임을 고려했을 때 하나의 권력 형식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마오리들도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권력의 한 형식으로 활용되는지 알고 있다. Linda Tuhiwai Smith는 단어 ‘리서치(research)’는 ‘그 단어가 식민주의 최악의 접근을 의미하기에’ 원주민의 세계 어휘집에서 가장 더러운 단어 중 하나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어떻게 과학적 지식이 마오리를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한 검은 피부의 ‘타자(other)’로 만드는데 이바지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지식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는지를 강조한다. 더 나아가 Donna Matahaere-Atariki는 ‘원주민의 남성성이 묘사되는 과정을 통해 뉴질랜드 식민 과거에 대한 현대의 가득 찬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마오리 남성성은 파케하 남성성과 유사하게 다원적 사회역사적 구조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Hokowhitu는 마오리의 남성성은 식민화 과정에서 파케하 남성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정의되었다고 주장한다. 파케하 남성들은 ‘마오리와 여성들을 “타인(Other)”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예를 들어 ‘마오리의 미개함은 본질에서 파케하를 문명인으로 정의했다. 식민화의 물질적 상징적 폭력을 통해서 마오리 남성성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받아 마오리 남성에 대한 지배적 묘사는 ‘육체적 능력과 감정 (physicality and passions)’에 대한 과도한 강조와 함께 해롭고 바람직하지 못한 데에 집중되었다. 영화 once Were Warriors의 Jake the Muss는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이며 알코올 중독자로서 아버지/남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Hokowhitu는 ‘이런 기능 장애의 배경에는 마오리 남자들을 “육체적 존재(physical beings)”로 만든 식민지 프로젝트가 있다’고 주장한다. 식민화 이전의 마오리 남성성은 지금과 달랐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러피안 식민화 이전 시대의 마오리는 자신들을 씨족(hapu)과 부족(iwi) 속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이런 가까운 친척 관계는 가족(whanau)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tikanga로 불리는 행동 강령에 따라 규제되었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상호 호혜성은 마오리의 젠더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다. 예를 들어 남자들의 정체성은 공동체적이고 상호 호혜적 방식으로 구성됨에 따라 자신만의 바람과 필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마오리 남자들에게 자기중심적이고 존경받지 못할 행동으로 간주히였다. 그러나 많은 파케하 연구가들은 식민화 이전 마오리 사회를 가부장적 사회로 정의하려고 시도했다. Hirini Mead는 마오리는 젠더의 역할을 계층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다른 개념적 시각으로 젠더 관계를 이해해 왔다고 주장한다. 마오리 남성과 여성은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들 가족 행복이라는 공동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똑같이 기여한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마오리 남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지배적이 되어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Hokowhitu는 사회역사적 연구를 했다. 그는 식민화가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와 적자생존의 원칙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오리 신화와 행동강령은 이에 따라 이단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 상황 속에서 마오리는 ‘본질에서 열등하고 새로운 식민지의 사회 경제적 발전의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이런 관점은 마오리 세계관의 적법성을 박탈했으며 마오리 존재방식을 부인하고 유러피안 지배를 정당화했다. 1867년 파케하 국회의원의 아래 발언은 당시 파케하의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Haka’는 마오리들의 현 피폐한 상태, 밑에 깔린 부도덕성의 노출, 타락 그리고 외설스러움 등에 뿌리를 둔 사악한 표현으로서 이 인종의 기본 바탕을 형성한다; 우리가 거친 나무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자질을 바꾸려면 성장하는 어린 마오리들을 강제로라도 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 교육은 식민지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마오리의 행동강령(tikanga)과 언어(te reo)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었다. 또 마오리 남자는 육체적 존재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영속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1880년대부터 1940년대에 이르는 동안 교육정책들은 마오리 학문적 능력이 제한적이고 부족하다는 이해를 강화시켰다. 아래 마오리 기숙학교 교장의 주장은 이를 뒷받침한다.
1000명 중의 999명은 높은 단계 교육의 긴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상업 과목에서 마오리는 파케하 학생과 경쟁할 수 없었다. 기술과목에서 마오리는 따라 하는 것은 잘하지만 스스로 창작하지는 못했다. 목수로서 그들은 감독자가 있으면 어느 정도 일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을 할 수 없었다. 농축산업은 그들에게 적합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따라 마오리들은 수작업과 농축산 기술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고 화이트 콜라 취업으로 이어지는 학위를 딸 수 있는 길은 제한되었다. 이 편향된 교육의 결과 1965년까지 압도적 다수 마오리는 단순 노동자와 운전사로 일을 했다. ‘육체적 존재’로서 마오리는 그러나 전쟁과 럭비에는 파케하와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전쟁과 럭비에 마오리의 참여가 가능했던 것은 ‘마오리들이 단순히 “엄청나게 잘하기(damned goods)” 때문이 아니라 마오리 운동선수와 마오리 군인은 그들이 육체적이고 야만적 사람들이라는 스테레오타입과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오리의 전쟁과 스포츠에서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육체적 존재로서의 마오리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한편 공격성에 대한 강조, 인내심, 폭력과 경쟁심을 통해 ‘Kiwi bloke’에 합류하는 기회를 동시에 열어 주었다.
육체적 존재로서 마오리 남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은 ‘마오리 남성의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며 여성 친화적 목소리’를 가려 왔다. 스테레오타입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해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마오리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서구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은 마오리 문화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오리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초월한 마오리 남성 중 몇을 나열해본다. 학계의 Ranginui Walker, Mason Durie와 Graham Smith; 예술가이자 저자인 Hone Tuwhare, Witi Ihimaera 그리고 Ralph Hotere. 이외에도 코미디언 Jemaine Clement, 영화감독 Taika Waititi 그리고 Lee Tamahori, 음악가 Jason Kerrison, 정치가 Pita Sharples 그리고 Kelvin Davis.
결론 (Conclusion)
이글에서 나는 파케하와 마오리 남성성의 문화적으로 지배적 표현 방식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특히 현대 에스닉 관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기 위해 패권적 남성성과 교차성 개념을 소개하고 이용했다. 또 파케하 남성이 뉴질랜드 식민화 과정에서 어떻게 영향력 측면에서 우월적 지위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련된 파케하 남성성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여성, 마오리 그리고 다른 소수 민족보다 파케하 남성들에게 폭넓은 혜택을 주었는지 기술했다. 역으로 마오리 남성성은 파케하 남성들과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남성들을 무기력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스테레오타입화되었다.
이글을 통해서 내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선정한 가장 존경받고/받거나 위대한 뉴질랜더들의 압도적 다수가 파케하 남성들인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차적 접근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남성들에 대한 획일적 일반화는 너무 쉽고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남성성 내의 그리고 개별 남성들 사이에는 커다란 다양성이 존재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글의 결론은 일정 부분 조심스럽게 읽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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