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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도시와 대도시-전원 (The Urban(e) and the Metro-rural in Aotearoa)
Peter J. Howland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도시와 시골에 대한 이해는 서로에 대한 반대로 정의된다. 실제로 문화 이론가 Raymond Williams는 ‘도시와 시골은 그들 자체 내에서 그리고 상호 연관 속에서 역사적 실체를 변화시켜 왔으며’ 그들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Williams는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등장 이후 유럽에서의 도시-시골 간 상호 작용을 기술했다. 이 상호 작용은 시골을 외진 벽지로 취급하면서 도시를 문명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권력, 높은 문화와 세계주의의 장소로서 이상화하는 시각과 시골을 정직한 노력, 제대로 된 전통, 단결된 공동체와 자연미를 가진 장소로 바라보면서 도시를 타락하고, 소외되고, 오염되고 붐비는 장소라는 반대되는 이미지로 보는 시각 사이를 오간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시골이 초기 유러피안 정착에 미친 영향부터 현대 도시화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이르기까지 도시-시골 간의 변화하는 역동성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초다양성 도시(super-diverse city)가 된 Auckland를 탐구하며 마지막으로 지방 시골 전원의 진화와 이 진화가 최근 대도시-전원의 시대에서 어떻게 지속해서 도덕적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겠다.
뉴질랜드 형성(Setting Aotearoa)
뉴질랜드에 온 초기 유럽 정착민들은 전 세계로 이주했던 19세기 5천만 명의 유러피안들 중 한 부분이다. 많은 이들은 끔찍한 환경 - 가령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1846-48), 급격한 인구 증가(영국은 1801년 1천 6백만 명의 인구가 1841년 2천 6백만 명이 된다), 경제적 궁핍, 유럽의 산업화로 말미암은 시골 경작지의 부재 그리고/혹은 시민의 소요 - 을 피해 탈출한 경우이다. 이 이민자들은 정착을 종종 ‘비즈니스 기회’로 여기면서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Edward Gibbon Wakefield와 그의 회사 - 웰링톤, 넬슨, 왕가누이 그리고 더니든에 각각 설립되었다 - 는 뉴질랜드를 자유로운 비즈니스와 자본주의 성과 중시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투자자의 천국으로 홍보했다.
James Belich에 의하면 정착민들은 목가적 유목사회의 신화적 황금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더 나은 영국(Better Britain)’과 진취적 회사와 정부 경영과 더불어 유토피아적 혁신 기술들을 지지하는 ‘더 위대한 영국(Greater Britain)’을 건설하려는 동기로 차있었다. 많은 정착민은 ‘세계의 변화 가능성(malleability of the world)’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었는데 이 확신에 의하면 뉴질랜드의 개발 안 된 황무지를 없애는 것 - 마오리를 그들 땅과 문화로부터 쫓아내는 것을 포함 - 은 도덕적 권리이자 의무였다. 이런 관점은 마오리들의 관점과 충돌했다; 마오리들은 사냥,화전 그리고 경작을 통해 산림의 상당 부분을 초지로 전환했고 비록 유럽피안의 방식을 반영한 많은 농업기술(가령 계단식 정원)을 사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최저생활에 기반을 뒀고, 종종 계절적이며, 관리에서 조상과 친족의 가치에 기반을 둔 경제를 하고 있었기에 손대지 않은 땅이더라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들에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주해 온 영국 정착민들에게 이 땅들은 비어있고 이용되지 않기에 ‘잘 활용될(superior use)’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마음속에는 이들 토지의 구매 혹은 강탈을 위한 모든 정당화 이유가 존재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땅들은 그들이 자주 찾던 ‘사용되지’ 않는 땅이 아니었으며 반대로 이 땅들은 마오리들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경작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정착민 마을은 증가하는 농부들과 연관된 방문객들 위한 일반 상가들, 대장장이, 숙박시설, 마구간과 호텔 등의 제공과 같은 시골 지역의 관심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많은 마을이 강 도하 지점, 기선 기항지, 도로 교차점 그리고 제재소나 채광 같은 추출 산업 근처에 위치했다. 더 나아가 마을 신문들은 규칙적으로 농업 관련 기사를 실었으며 동네 사람들은 계절노동을 제공하였다. 정착지는 밀접하게 분포했는데 하루 안에 시장에 갔다 올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숲, 언덕, 늪지 그리고 강 같은 지형에 의해 결정되었다. 생존한 마을들은 해당 지역에서 패권을 확립한 마을, 농업을 통해 이익을 남겼던 마을 그리고/혹은 특히 강과 바다 항구를 낀 교통 요충지들이다(예, 뉴질랜드의 가장 큰 7개 도시 - Auckland, Wellington, Christchurch, Hamilton, Napier-Hastings, Tauranga 그리고 Dunedin).
도시화된 뉴질랜드(Urban Aotearoa)
식민 정착의 모든 초점은 시골에 맞추어졌으며 국가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시골 경제의 중요성은 계속되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뉴질랜드는 점차 도시화하였다. 1881년에 뉴질랜드는 전체 인구의 60%가 시골에 사는 시골 사회였지만 1906-7년에 1,000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50%를 웃돌게 된다. 2001년 전체 인구 3백8십만 명 중 85.7%인 3백3십만 명이 도시에 살았다. 대부분의 도시 인구 - 대략 2백8십만 명 혹은 전체 인구의 71% - 가 주요 도시에 살았는데 Auckland는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116만 명이 사는 가장 큰 도시였다. 도시화 경향은 지속하여 2031년에 전체 인구의 91% 혹은 5백만 명이 도시에 살고 오클랜드 경우 2백만 명(40%)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도시화는 세계적 추세인데 2007년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과반이 도시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50년 세계 인구의 66%는 도시에 살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기간 뉴질랜드는 투자, 사람, 상품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세계적 네트워크에 점점 더 편입되었다. 주목할만하게 1990년대 뉴질랜드 경제는 현저하게 축이 이동하여 수익을 통한 서비스, 즉흥적 소비와 문화적 상품 그리고 세계 각 도시를 돌아다니는 관광객, 투자자 그리고 노동이민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예를 들어 Peter Jackson의 Wingnut Films와 Richard Taylor의 Weta Digital(반지의 제왕과 호빗 영화 제작자)은 세계적 커뮤니케이션과 노동 네트워크 덕분에 웰링톤(Wellywood)에 창조적 영화 산업을 발전시켰다. Weta Digital은 전 세계로부터 온 약 1,400명의 직원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특수효과 회사 중 하나이다.
도시풍(urbanity)의 세계적 흐름은 또 오클랜드를 초다양성 도시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압도적으로 가장 큰 도시(두 번째 큰 도시보다 인구가 배 이상 많음)로서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의 인구와 경제적 역동성을 지배한다. 오클랜드 같은 도시들은 인구가 적은 지역보다 더 많은 투자, 직업 그리고 사회적 기회 등을 제공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이민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39%가 넘는 오클랜드 사람들이 이민자이고 만약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그 자녀까지 포함한다면 56%에 이른다. 이 이민자 인구의 상당 부분은 아시안 - 특히 중국인과 인디안 - 으로 오클랜드 몇 지역은 에스닉 밀집지역으로 변모해서 시의 풍경은 차별화된 문화적 장소들의 모자이크처럼 점차 변화하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불균형으로 찢긴 인류의 미래는 이처럼 밀집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며 그 미래는 불확실하다. 지리학자 David Harvey에 의하면 ‘많은 이들에게 21세기의 도시는 인류의 치명적 결함 특성 중 최악의 것들이 절망의 장소에 모여 있는 반-이상향적 악몽을 연상시킬 것이다’. 도시들은 소유 권력, 특권과 불평등, 경찰국가 감시와 통제, 만성 질병, 붕괴하거나 노후화된 기간시설, 오염, 교통 체증과 폭력으로 점철된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미 오클랜드는 주택 부족과 건강하지 못한 과도하게 밀집된 주택 문제가 뉴질랜드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진다. 2013년 오클랜드 자가 소유자들은 그들 수입의 평균 15.2%를 자택 유지(예, 모기지 상환:역주)에 소비했는데 이는 웰링톤 12% 그리고 캔터베리 10.6%와 비교된다. 또 뉴질랜드 과밀 세대의 49.4%가 오클랜드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는 1991년의 35.7%와 비교된다. 한편 타카푸나에 위치한 한 저택은 3천5백만 달러의 가격으로 시장 매물로 나온 시점에서 오클랜드는 기록적인 노숙자 비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도시는 다른 가능한 미래를 향한 희망을 제공하는 저항과 사회적 변화의 장이기도 하다. 비근한 예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공공 교통에 대한 ‘무료이용’ 시위, 터키의 Gezy Park 개발 반대 시위, 그리스와 스페인의 반 궁핍 시위 그리고 세계 900곳이 넘는 도시에서 진행된 Occupy 시위 등이다. 이 운동들은 비록 계급적 한계(교육받은 중산계층 멤버들이 주로 참여)와 에스닉 한계가 있었지만 ‘도시생활에 대한 불만과 소외’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증가하는 사회적 불평등, 상승하는 생활 비용 그리고 이유 없는 폭력적인 경찰 억압에 대한 보편적 분노의 표시였다’. 이 같은 유례없는 도시화와 불평등의 증가 상황에서 뉴질랜드의 도시와 시골 생활에 관한 연구와 그 연구 결과가 현재 ‘우리 사회의 요구’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도시화와 젠트리피케이션(Urbanism and Gentrification)
위에서 언급한 저항 운동을 촉발한 도시에 기반을 둔 특혜와 소외의 힘과 유사한 형태가 뉴질랜드, 특히 오클랜드에도 작동한다. 오클랜드에 대한 많은 비판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특히 주목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땅 개발업자, 구입자, 임대업자, 소매업자, 정부 관료, 정치 그리고 관련 규정들 모두 특정 지역이 저개발 되었다고 인정하면서 그 지역을 중산층 도시 표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공모하는 과정이다. 이같은 변모는 종종 노동자 계급, 도시 마오리와 퍼시피카, 그리고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척과 상대적 결핍으로 몰고 간다.
주목할 만한 젠트리피케이션의 ‘1차 물결’은 오클랜드 중심부 Ponsonby의 변모이다. 2차 대전 이후, 상당수의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자영업자들과 전문직 직장인들이 Ponsonby를 떠나 새로운 교외 지역으로 떠남에 따라 이 지역은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 계급 마오리와 ‘떠난 자보다 현저하게 가난한’ 1세대 퍼시피카 이민자들에 의해 점유된다. 이 백인들의 탈출은 ‘white flight’로 알려졌으며 이후 Ponsonby는 말 그대로 ‘도시의 쇠락과 황폐’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낮은 임대료, 싼 주택 가격 그리고 사회-경제적 다양성에 매력을 느낀 젊고, 자유로운 고등교육을 받은 파케하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면서 주택, 소매업 그리고 공동체 공간을 고치기 시작한다. 이 새 거주자들은 기존의 남성성이 지배하던 흐릿한 창문의 술집 문화를 거부하고 세련된 카페, 전문화된 음식, 옷 그리고 예쁜 장신구 가게들을 선호하는 ‘도시 공적 문화의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다. 1976년에 4개에 불과했던 카페는 2002년에 90개로 증가했는데 이 카페 중 일부는 동성애자에게 우호적 환경을 제공하고 일부는 보도에 테이블을 설치하기도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1991년과 1998년 사이 폰슨비의 평균 주택 가격은 $165,000에서 $415,000으로 치솟게 된다. 이미 1980년대에 상당한 거주자 교체가 발생하게 되면서 폰슨비에서 살던 많은 마오리와 퍼시피카 거주자들은 좀 더 싼 거주 지역을 찾아 오클랜드 남쪽의 Mangere, Manurewa 그리고 Otara로 이사하게 된다.
이 수용과 배척, 특혜와 불평등 - 자본주의의 규칙적 구조적 역동성 - 의 상호 작용은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의 신자유주의 버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도심의 아파트 개발이 주 특징인 젠트리피케이션의 ‘2차 물결’은 1990년대 정부가 오래된 지역 정책을 포기하고 개별적 도심 개조업체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 자본, 노동 그리고 시장들의 자유로운 이동; 그리고 소비자 통치권 등을 강조하는 도시 변모의 시대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입법의 핵심 법안들은 Local Government Act 1989 (지방정부 법 1989), Resource management Act (자원관리법) 1991 그리고 Building Act (건축법) 1991이다. 지역 정부마다 해석이 달랐지만, 오클랜드 시는 자유시장(laissez-faire)을 받아들인 결과 3종류의 투자 시장을 창출하게 된다: 오너/투자자 (전체의 75% - 일반 임대 포함), 학생 주거용 (전체의 9%) 그리고 서비스 아파트 (전체의 15%). 더 나아가, 2007년에 공식적 디자인 규칙과 아파트 최소 면적 규정이 도입된다: ‘이전까지 오클랜드 아파트 개발은 열악한 디자인과 16 제곱 미터에 불과한 면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건축 산업의 탈규제는 오클랜드에 열악한 디자인의 도심 아파트와 ‘물새는 건물(leaky buildings)’라는 달갑지 않은 유산을 남겨주게 된다.
1991년과 2007년 사이 약 16,000의 아파트가 오클랜드 CBD에 지어졌으며 1996년과 2006년 사이 아파트 신축 허가는 2,805건에서 4배 이상 증가했다. 유사한 개발이 웰링턴에서도 이뤄져 1996년과 2006년 사이에 도심 개발 허가 건수가 1,410에서 4,743으로 증가했다. 더 나아가 오클랜드 CBD의 인구 밀도는 1991년과 2006년 사이 매 5년 마다 2배씩 증가했으며 2006년 ㎢당 4,600명의 인구 밀도는 2031년에 13,3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2006년 뉴질랜드 평균 도시 인구 밀도는 ㎢당 522명이었다.
이어지는 ‘3차 물결, 새 건물(third wave, new build)’ 은 기업투자자들과 정부 간 신자유주의적 협업으로 이루어진 오클랜드 Viaduct Harbour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Viaduct Harbour는 1930년대 열악한 주택 상황으로 악명이 높았었다. 그러나 오클랜드가 2000년과 2003년 America’s Cup을 유치하게 되면서 중앙 정부와 시 정부는 이 슈퍼 리치들의 슈퍼 요트를 위한 투자를 결정하게 된다. 오클랜드 시에서는 공공 광장, 보도 그리고 방파제 등의 개발을 위해 4천만 달러, 오클랜드 지역 서비스 트러스트는 7천만 달러 그리고 중앙 정부는 1천만 달러를 이 스포츠 행사의 유치를 통해 장단기적 혜택을 기대하며 투자하게 된다.
이 Viaduct Harbour 젠트리피케이션 - 건축학적으로 디자인된 아파트 (예, Latitude 37과 The Point), 고급 식당과 24시간 민간 보안업체가 순찰을 하는 세련된 공적 공간과 공적 공간에서의 음주 금지를 포함 - 은 ‘양질의 독점적 그리고 세계적 도심 형태로 이 지역을 변모시켰다.’. 중요하게도, ‘Harbourside’의 가구 중간 수입은 오클랜드 시의 가구 중간 수입보다 29% 그리고 다른 CBD 가구 중간 수입보다 150% 이상 높았다. 이 새 건물 젠트리피케이션은 ‘하버사이드가 엘리트 밀집 지역을 대표하고 CBD의 나머지 지역은 저소득층과 학생이 지배적인 인구로 구성된’ 또 다른 도시 기반의 ‘양극화된 사회적 공간’을 창출했다.
대도시-전원 뉴질랜드 (Metro-Rural Aotearoa)
뉴질랜드의 강화되는 도시화에도 시골은, 이상과 실제 측면 모두에서, 여전히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뉴질랜드의 도시 지역은, 특히 작은 마을의 경우, 양,소 그리고 작물들로 이루어진 녹색 목초지의 바다 위에 점처럼 찍혀 있는 섬처럼 보인다.농축산업이 전체 토지 면적의 43% (1,430만 헥터) 그리고 임업이 7%(230만 헥터) 를 차지하고 있음에 반해 도시는 3%(1백만 헥터)에 불과하다. 3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는 17개에 불과하며 나머지 마을은 많으면 수천 아니면 수백 명만의 주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뉴질랜드의 시골은 특히 오클랜드로 상징되는 도시 지역의 성장과 활기에 비교했을 때 거의 항구적 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일 수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시골 지역은 특히 1980년대 농가에 대한 정부 보조의 삭제와 최근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은행, 우체국 그리고 학교 같은 기간 시설의 폐지 탓에 뚜렷한 ‘하향세’를 겪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농축산업 고용인 수는 20% 감소했고 시골 거주 세대의 약 1/3만이 농축산업,어업 혹은 임업에 종사할 뿐이며 비 축산업 수입이 농장 수입의 30~50%를 차지한다.
더 나아가 Northland, Gisborne 그리고 Bay of Plenty의 시골 지역은 모두 전국 평균 대비 낮은 중간 소득과 높은 실업률과 높은 결핍 수치를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의 시골은 또 가족 경영 농장의 종말을 경험하는데 1986년 80,000개였던 것이 20년 뒤 65,000개로 줄어들었다. 대신 기업이 운영하는 대규모의 하지만 환경 오염이 의심되는 데어리 목장은 1982년 약 3백만 마리였던 소가 2007년 526만 마리로 증가했다. 데어리 목장의 평균 크기는 1988년 65헥터 내 소 151마리에서 2006년 118헥터 내 소 322마리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뉴질랜드의 시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농축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5~6%를 유지하고 있다; 가구당 중간 소득은 도시 가구와 비슷하거나 능가할 때도 있다; ‘에스닉’이민자와 계절노동자들로 인해 갈수록 시골 인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 잘 알려진 데어리, 양 그리고 농작물 외에도 - 다양해진 경제: 포도밭; 올리브 과수원; 차 밭; 라이프스타일 블록; 부족 및 와이탕이 조약 정착 투자; 타조, 들소와 라마 목장; 그리고 1980년대에 두 배로 증가한 시골 여행 숙박시설 등.
신화적 목가적 황금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러피안 정착민들에서 유래된 시골 생활에 대한 낭만화되고 이상화된 개념은 특히 뉴질랜드 도시인들 같은 주류 문화에서 시골에서의 목장 운영을 결정하는데 핵심적 구실을 해 왔다. 이런 시골 생활에 대한 국가적 상상은 근면한 노동, 도덕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최대한의 수확, 농부 가족들 간 밀접한 친교활동, 혁신적 ‘Number 8 wire(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능력: 역주)’, 느린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푸른 초원이 가져다주는 자연적 아름다움과 평안함 등을 축복하게 하였다. 실제로, 이런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은 호주와 미국의 교외 지역을 본떠 ‘적절하지 않은’ 유럽의 도시 특징 - 좁은 도로, 고밀도 인구와 테라스 하우스(더니든의 Dundas St와 같은) - 대신 ¼ 에이커의 섹션을 가진 마을과 도시를 뉴질랜드에 가져왔다. 이런 동경은 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쇼인 ‘Country Calendar’가 매주 50만 명의 시청자를 티비 앞에 끌어모으며 50년 이상 방영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도시와 시골 간의 관계는 명확히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시골 지역들은 도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상당수의 시골 마을 사람들이 가까운 주요 도시에 출퇴근 직장 생활을 한다. 이런 지역의 인구는 2031년까지 203,700 혹은 전체 인구의 3.7%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뉴질랜드에는 약 175,000개의 라이프 블록이 있는데 거주자들은 전에 도시에 살던 사람들, 도시 관광객, 휴가객 그리고 은퇴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라이프 스타일 블록 중 하나가 Matakana인데 이 지역 홍보 광고문은: ‘오클랜드에서 40분이면 도착’, 30개의 ‘고급(boutique)’ 포도밭, 올리브 농장, 식당들과 ‘유명한’ 토요일 농부 시장이 열립니다.
또 다른 곳은 웰링턴에서 1시간 운전 거리에 있는 조그만 고급 ‘와인 마을’인 Martinborough이다. 이 마을을 1879년에 만든 John Martin은 19살의 나이로 아일랜드에서 이민 와 웰링턴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와 정치인으로 변모한 인물이다. Martinborough는 Martin이 33,000에이커의 Huangarua 역을 50,000파운드라는 당시 기록적인 금액을 주고 사들인 땅으로 이후 땅을 1에이커가 최대치인 593개의 주거용 섹션과 4.5에이커에서 1,000에이커에 이르는 334개의 작은 농장용 섹션들로 나누었다.
마틴보로의 와인 산업은 1980년대 비즈니스 다각화의 일환과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가 없어짐에 따라 섹션들을 파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이 마을은 웰링톤에 사는 부유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도시 중산층에게 인기 있는 휴가지이다. Pinor noir로 잘 알려진 마틴보로는 약 40개의 포도밭(생산량은 20만 리터가 채 안 됨)과 많은 관광객 상대 숙박시설 - 5 스타 마틴보로 호텔부터 수백 개의 홈스테이와 B&B - 을 가지고 있다. 마틴보로의 최대 인구는 당연히 관광객들이다. 상주인구는 약 1,400명인데 2월과 3월의 축제 기간에는 3만 명의 방문객이 방문하며 11월의 와인 축제에는 2만 명의 방문객이 찾으며 그 외 기간에도 당일 관광객이나 주말을 이용한 휴가객들이 찾는다.
결론(Conclusion)
Raymond William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와 시골 간 얽혀 있는 역동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의 삶을 비교할 것과 ‘우리 사회의 위기를’ 밝혀내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초기 유러피안 정착민에 대한 시골의 영향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 영향력은 현대 도시정착 방식의 확산과 많은 작은 마을 그리고 전원생활에 대한 끊임없는 낭만화 덕분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추가로 우리는 도시화와 이 도시화가 어떻게 도시 인구의 증가와 밀집도의 증가; 부, 특권 그리고 문화 흐름의 집중; 그리고 오클랜드의 초다양성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또 세계 자본주의, 도시화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떻게 불평등, 사회적 소외, 주택구매의 어려움, 과밀화와 노숙 같은 문제 - 결국 도시 시위를 촉발하는 - 를 발생시켰는지도 살펴보았다.
뉴질랜드의 시골은 분명 부분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럼에도 도시인들에게 평화로운 가족과 공동체; 깨끗한 자연환경; 자립적 근면 노동; 그리고 생산적 보상 같은 도덕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이상화된 시금석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했던 것처럼 각 지역의 목가적 전원은 대도시-전원 공존의 목가적 생활을 상상하는 도시 거주자들의 도시적 바람을 충족시켜야 하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명백히 현대 뉴질랜드의 도시와 시골 삶과의 상호작용에서 도시성의 확산과 영향력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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