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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책 ‘A land of milk & honey’에 대한 요약 및 독후감 시리즈: 우리는 여기에서 모두 함께일까? 편
한국과 뉴질랜드, 총선의 해를 맞다
올해 4월 15일에는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그리고 9월 19일에는 뉴질랜드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자는 한국 국적이지만 영주권을 취득하고 한국 내 주민등록은 말소된 교민인 ‘재외선거인’과 유학생, 주재원, 그리고 워킹홀리데이처럼 한국에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임시로 해외에 체류하는 사람인 ‘국외부재자’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 중 투표참여를 원하는 자는 2월 15일까지 재외선거인 등록 신청 및 국외부재자 신고를 한 후 4월 1일부터 4월 6일 사이에 재외투표소에서 투표하면 된다. 투표권 행사에서 재외선거인과 국외부재자 간 차이점은 재외선거인은 한국에 주민등록지가 없으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만 뽑을 수 있지만 국외부재자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둘 다 뽑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재외국민의 최근 투표율을 살펴보면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문재인 당선) 때 221,981명이 참여하면서 투표율 75.3%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박근혜 당선) 때의 71.1%(158,225명)보다 높아진 숫자이며 이는 한국의 77.2%(19대 대선)와 75.8%(18대 대선)에 버금가는 수치로 보일 수 있다. 허나 이 재외국민의 투표율과 한국의 투표율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왜냐하면, 투표율을 산출하는 모집단(population: 100%)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19대 대선 투표율 77.2%는 한국의 투표 자격이 있는 전체 유권자 42,679,719명을 모집단 (100%)로 한 경우인데 반해 재외국민은 재외 선거인명부에 '등록'된 영주권자와 국외부재자 신고인명부에 ‘등록’된 해외 임시체류자의 숫자를 모집단(100%)으로 했기 때문이다. 즉 재외국민 투표율은 재외 전체 유권자 대비 투표참여율이 아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19대 대선의 경우 전체 유권자(추정) 197만 명 중 11.2%만 참여한 셈이다. 중앙선관위의 발표를 인용한 기사에 의하면 뉴질랜드 한인은 19대 대선에 4,069명이 선거인명부에 등록했고 이 중 3,094명이 투표함으로써 약 76%의 등록인원 대비 투표율을 기록했다. 코리아 포스트의 기사를 보면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유권자는 약 13,100명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오클랜드 분관에서 투표한 2,781명을 투표율로 환산했을 때 21.10%에 그치게 된다. 해외 전체 유권자의 투표율 11.2%보다는 많이 높지만, 한국의 77.2%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가 없는 뉴질랜드는 2017년이 가장 최근 국회의원 선거였다. 중앙선관위의 집계 방식마다 수치 차이가 조금씩 나는데 당시 총 유권자 수는 약 357만 명인데 이 중 선거인명부에 등록한 인원은 약 330만 명 그리고 이 중 실제로 투표에 참여한 이는 약 263만 명이다. 즉 등록인원 대비 투표참여율은 79.8%, 총 유권자 대비 투표참여율은 73.7%이고 총 유권자 대비 선거인명부 등록률은 92.4%이다.
사전 선거인명부의 등록 없이 곧 바로 투표가 가능한 한국 선거의 투표율과 직접 비교를 하려면 한국 선거의 재외국민 투표율과 뉴질랜드 국회의원선거 투표율은 선거인명부 등록인원 대비 투표율이 아닌 총 유권자 대비 투표율을 산출하는 것이 맞는 방식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2017년 대선 한국 내 유권자의 투표율은 77.2%, 한국 외 재외국민 투표율은 11.2% 그리고 2017년 뉴질랜드 총선의 투표율은 73.7%이다. 그리고 오클랜드 거주 한인의 19대 대선투표 참여율은 21.10%이다.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양국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시의성도 있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 형식인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뉴질랜드와 한국 양국 모두 대중들의 가열한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소중하게 지키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우리의 자산인데 후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기풍(ethos)에 의해서 점차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상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위 한국은 대선을 예로 들어서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이 제시되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의 경우 투표율이 불과 58%에 불과해 뉴질랜드 73.7%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줬다. Richard Shaw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뉴질랜드 대의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힘든 싸움을 통해서 쟁취된 것임을 여성과 마오리의 완전한 (피)선거권 획득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면서 현대 뉴질랜더들이 대의민주주의 - 더 나아가 정치 일반 - 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의 부정적 사회적 함의를 설명코자 한다.
우리가 고대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이상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노예,이민자(metics),여성과 같이 민주주의의 기본 구성원인 ‘시민(citizen)’이 될 수 없는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human)’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모든 인간이 자격과 조건을 떠나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 수용된 것은 뉴질랜드 역사를 돌이켜 봐도 최근의 일이다. 여성, 마오리 그리고 아시안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개인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로 선거할 수 없거가 불이익을 당하는 행태가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졌으며 21세기인 지금 노골적인 차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 뉴질랜드의 대의민주주의에 존재하고 있다.
뉴질랜드 여성의 (피)선거권 획득 과정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피)선거권을 규정한 법률은 1852년 New Zealand Constitution Act이다. 이 법률의 적정 재산을 보유한 남성에 한해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여성은 원천적으로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거권을 주지 않았으며 개인 재산 소유 조항 때문에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한 마오리들 대다수는 선거권을 가질 수 없었다. 여성은 1893년 90미터가 넘는 탄원서로 상징되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선거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 선거권을 얻는 과정에서 일부 남성들의 ‘선거날 아이가 아프면 현모양처는 집에 머물고 최악의 여자들만 투표장에 나올 것이다’같은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론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1893년 그들의 첫 번째 선거에서 남자들 참여율 70%보다도 훨씬 높은 85%의 투표율을 보였다
여성들의 선거권 부여에 동참했던 일부 남성들마저 여성에 대한 피선거권 부여에는 반대하는 태도를 취함에 따라 피선거권은 선거권이 부여되고 26년이 흐른 1919년에서야 부여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여성이 중성화될 것이다’ 혹은 ‘ 예쁜 여성들이 의회에 등장하면 의지 약한 남성 의원들의 주의가 산만해질 것이다’라는 차별적 발언을 감수해야 했다. 여성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졌음에도 실제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은 1933년으로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지고 40년이 지났을 때였다.
마오리 및 아시안에 대한 정치적 차별
마오리는 전술했듯이 1852년 New Zealand Constitution Act에서 여성처럼 성이 다르다는 이유처럼 마오리라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에서 배제되지는 않았지만, 유권자의 기본 자격 중 하나인 개인 재산 소유 여부 부문에서 대다수 마오리의 토지 소유 형태가 부족(iwi) 혹은 씨족(hapu)의 공동 명의임에 따라 현실적으로 투표권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런 개인 재산 소유 여부를 선거권의 충족 요건에 넣은 영국 식민 정부의 의도에는 선거권이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가 아니라 자격이 있는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라는 당시 파케하들의 인식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오리 선거권에 대한 차별적 법안에도 1867년 Maori Representation Act가 통과되어 마오리는 의회 내 4석의 좌석을 보장받게 된다. 이 뜬금없다 할 수 있는 마오리 의회 좌석 신설에 대해서는 앞으로 증가할 마오리의 의회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파케하의 선제 포석이란 분석과 더불어 와이탕이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파케하 내 양심 세력의 목소리 덕분이라는 분석이 혼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회 내 마오리 좌석은 이후 마오리에 대한 정치적 차별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 된다. 마오리는 이 의회 내 마오리 좌석 때문에 100년 넘는 1975년이 될 때까지 일반 (즉 유러피안) 선거구에서 투표할 수 없었고; 파케하들이 비밀 선거를 할 동안 마오리는 1910년까지는 거수투표를 그리고 1937년까지는 투표소 공무원 앞에서 선서 투표를 해야 했고; 1967년까지 마오리는 일반(유러피안) 선거구에서 후보자로 출마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마오리 좌석이 1867년부터 1994년까지 거의 130년간 4석으로 고정되었는데 이 기간에 의회 좌석 수는 72석에서 99석으로 증가했었다. MMP의 도입 덕분에 마오리 좌석 수 제한이 없어진 1993년에도 마오리 선거구의 유권자 수는 일반 선거구의 유권자보다 2배나 많았다. 현재 마오리 좌석 수는 마오리 선거구의 마오리 유권자 수를 고려하여 7석이다. 마오리의 피선거권은 1967년 이후 제한이 철폐돼 일반 선거구에서도 출마할 수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일반 선거구를 통해 마오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예를 들어 1969년과 1984년 동안 6번의 총선에 514명의 마오리가 출마했으나 당선자는 그 중 0.58%에 불과했다.
중국인 초기 이민자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은 1952년이 될 때까지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다. 대부분 파케하들이 공식적으로 (피)선거권을 가지기 시작한 1852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그리고 여성의 선거권이 허용된 1893년으로부터도 거의 6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 당시 중국이민자들이 시민권 그리고 이에 따른 투표권을 획득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 중 하나는 이들 중국인이 뉴질랜드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없고 뉴질랜드 정치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뉴질랜드 대의민주주의의 현 주소
2020년 현재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 마오리 그리고 아시안 이민자의 (피)선거권이 불과 70년 전까지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미래에 지금을 돌아보면 부자연스러울 정치 지형이 많이 남아있다. 2020년 현재 마오리는 마오리 좌석 7석을 포함해서 전체 의석의 24%(29석)를 차지하며 그들의 인구 비율(16.5%)을 웃도는 숫자를 달성해서 마오리 좌석의 존립 의미를 묻는 지경까지 도달했지만 여성은 전체 120명 국회 의원 중 여전히 38%(46명) - 역대 최고의 비율이지만 - 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가장 불균형적으로 의회에 대표를 보내지 못하는 그룹은 아시안 이민자들이다. 현재 아시아 출신 국회의원은 7명(인도 출신 3명, 이란 출신 1명, 필리핀 출신 1명, 중국 출신 1명, 한국 출신 1명)으로 모두 비례제 국회의원(list MP)이며 전체 의원의 5.8%(전체 인구 대비 아시안 비율은 15.3%)에 불과하다. 이런 아시안 국회의원의 불균형적 소수 대표는 1세기 전 아시안들은 정치에 관한 관심이 없기에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파케하 위정자들의 주장이 1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부분적으로 맞다. 2016년 42%의 투표율을 기록한 지방선거(Local Authority Election)에서 인디안 - 두 번째 최하위 - 을 제외한 아시안의 투표율은 ethnic group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이민 온 지 5년 미만 이민자들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기의 대의민주주의
현재와 같이 젠더,인종,계급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는 1인 1표의 대의민주주를 이룩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시민’의 영역에서 배척되었던 이들 - 여성, 마오리, 아시안 등 - 의 ‘시민’의 되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이렇게 얻어진 대의민주주의이지만 21세기 오늘날 그 위기를 맞고 있다. 아래 그라프는 1984년부터 2014년까지 총 유권자 대비 투표율이며 테이블은 1981년부터 2008년까지 총 등록자 대비 투표율이다. 일시적 등락은 있지만 둘 다 전반적 하락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투표율뿐만 아니라 등록률도 같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75년 98.2%였던 등록률이 2017년에 92.4%까지 하락한다. 아래 그래프는 2017년 총선 때 나이별 등록률을 보여주는데 18 ~ 24세의 연령 유권자 중 72.3%(전체 등록률은 92.4%)만 등록했음을 보여준다. 2014년 총선 때의 75%보다 하락한 수치이다. 이는 1/4이 넘는 27.7%의 청년 유권자들이 아예 유권자 등록 자체를 포기했다는 의미이며 이 젊은 층의 등록 포기율은 전체 미등록 유권자의 절반 가까운 47%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등록한 10명 중 3명(30.73%)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왜 현대 뉴질랜드인들은 투표하지 않는가?
투표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로부터 멀어지는 경향 - 특히 젊은 층 - 의 원인을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동어반복적 피상적 접근이다. 투표 기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그들의 소망에 반응하지 않는 현 정치 형식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이런 뉴질랜더들의 시들해진 투표에 관한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 Electoral Commission은 정치의 효능성, 투표에 대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 계산방식과 투표 습관을 어떻게 향상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Jack Poster와 Dylan Taylor는 유권자들이 투표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정치-경제적 환경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Richard Shaw의 이해와 궤를 같이한다.
Jack Poster와 Dylan Taylor은 뉴질랜드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소에 주목한다.
첫째, 주요 정당, National과 Labour, 간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적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즉 국민당과 노동당 모두 국내 경제의 세계 시장에 대한 개방,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재정 투융자의 제한 그리고 노조 영향력의 축소를 지속해서 추구하고 있다.
둘째, 이처럼 정당 간 본질적인 차별성이 사라짐에 따라 유권자들의 특정 정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 성향이 사라지면서 정당과 노조는 유권자들을 동원할 능력과 의지가 감소 혹은 상실된다. 과거, 예를 들어, 노동자와 노조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동당의 집권을 위해 투표에 참여했고 또 이에 위협을 느낀 자본가 및 중산계층 그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민당에 투표하는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높은 투표 참여율이 기록될 수 있었다.
셋째, 뉴질랜드의 경제가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되면서 유권자들은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과 요구에 역행하거나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네째, 빈부 격차의 증가와 고착화는 위 요소들과 더불어 노동자와 가난한 유권자들의 투표에 관한 관심을 더 멀어지게 한다. 무기력한 노조와 국민당과 본질적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현 노동당 때문에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투표에 참여할 의지를 잃게 되지만 현행의 공공투자 축소로 혜택을 보는 자본가와 중산 계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다. 2011년 총선 투표를 분석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28%의 유권자는 ‘일상생활 유지에 필요한 돈’이 없었으며 35%의 실업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당은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유권자 그룹을 대상으로 정책을 입안 실행하므로 이 악순환은 반복된다.
투표율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Jack Poster와 Dylan Taylor는 이 경향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처방과 더불어 이 경향이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관련이 있으므로 구조적 변화와 같은 장기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기적 처방은 부자들의 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이들의 선거비용에 대한 기부금을 제한하거나 현행 MMP 하에서 정당 최저 득표율 5%를 3%로 하향 조정함으로써 사표를 방지하여 더 많은 군소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장기적 처방으로는 첫째, 진정으로 노동자, 임시노동자 그리고 소수민족 이민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기존의 좌파 성향을 띤 정당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조직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둘째, 이 나라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Unite와 FIRST 같은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투적 노조의 재건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의 경제 개입과 과세에 대한 우리의 사고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부의 재분배와 생산수단 소유권에 대한 보다 공평한 분배가 필요하다. 일부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은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불균형적으로 증대시켜 단순 1인 1표를 떠나 모든 표의 균등한 영향력의 행사라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기승전’신자유주의’?
국가(state) 혹은 사회(society)가 시장(market)을 완전히 통제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아니더라도 케인즈주의로 통칭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체제하에서도 공적 가치는 사적 영리 추구에 우선했다. 그 시대에 사회구성원은 시민(citizens)으로 불렸으며 공적 인간(public human)이 주 정체성이었다. 그 시대에 시민은 시장을 경제(economy)의 영역에서 가두어 두고 사회의 통제를 받게 했었지만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점령한 현재, 시장은 경제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그동안 자신을 통제했던 사회를 집어삼키면서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장사회(market society)를 구축했다.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시장의 원리는 무엇인가?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로 규명하면서 이들의 이익추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거, 자원의 효율적 분배 측면에서 최적의 평형 상태의 사회가 된다는 이론이다.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자연 속 동물의 세계는 신자유주의 논리처럼 알아서 먹이사슬의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얼룩말 숫자와 포획자 사자 숫자의 비율적 균형이 맞추어진다. 신자유주의가 이와 같은 약육강식 세계의 균형을 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포식한 사자는 더 사냥을 하지 않지만 자본의 식탐에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중재자의 간섭이 없어도 사자는 ‘알아서’ 사냥을 하지 않지만, 자본은 자기증식 본질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계속한다. 그 결과가 현재 뉴질랜드와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는 극도의 부의 집중, 그리고 극심한 빈부 격차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위적 메커니즘이다. 자신의 이해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로 인간을 이해하는 신자유주의하에서 이 사회적 약자는 병약한 동물 새끼처럼 도태될 것이고 실제로 빈부격차와 빈곤층의 증가 형식으로 도태되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 사회가 동물 사회보다 나은 점이 그리고 나아야 하는 점이 바로 이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인위성이다. 사회적 약자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회가 바로 인간 사회를 동물 사회와 차별화하는 문명화된 사회이다. 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적 제도가 민주주의이며 1인 1표 대의민주주의이다. 정치헌금 형식으로 경제적 포식자는 1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사회 하위계층 구성원에게는 각 1표가 있다. 이는 이전 인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여전히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강력한 무기도 신자유주의의 패권적 이데올로기에 위협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사회에서 우리는 시민 대신 소비자(consumer)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단지 실물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경제적 활동을 할 때만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서 소비자가 되었다. 음악은 이제는 감상 되지 않고 소비된다. 투표도 소비의 대상이 된다고 신자유주의는 암시한다. 투표일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항상 옳은 선택을 하게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적 인간은 투표라는 정치문화를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여가 문화를 소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지킬 것이 많은 부유한 소비자들은 투표를 선택한다. 이들의 계급 의식은 가난한 자보다 더 투철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가난한 자들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선언을 하겠는가? 한국의 선거 행태를 보면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한 국가의 국회의원으로 뽑힐 수 있었느냐는 의문을 갖게 할 정도의 민망한 수준의 지식과 언변을 가진 국회의원의 지역구를 보면 부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부자들은 자신 지역 대표의 교양과 철학에 관한 관심보다는 그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꼭두각시처럼 일해 줄 것인가에 관한 관심만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구성원 전체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그 후안무치함을 사랑할지 모른다.
투표의 의무화를 지지하면서
이처럼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염증을 지속해서 일으켜 가난한 자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대의민주주의마저 서서히 고사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질주를 가로막는 마지막 잠재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은 신자유주의일지 모른다. 이에 대항하는 한 방법은 투표의 의무화이다. 즉 투표를 권리가 아닌 의무로 구분 짓는 것이다. 투표를 의무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벨기움, 룩셈부르크 그리고 그리스와 더불어 바로 옆 나라 호주가 이 투표의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호주는 강제력이 있어 투표에 최초 참여하지 않으면 AU $20의 벌금이 부과되고 이후 또 참여하지 않으면 AU $50로 벌금이 상향 조정되며 이마저도 거부할 경우 운전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 벨기움의 경우 투표 불참 시 최초 벌금을 내지만 4번 이상 투표에 불참할 경우 이후 10년 동안 투표에 참여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공공 기관에 취직을 못 할 수도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2017년 RNZ( Radio New Zealand) 과의 대담에서 노동당 전 수상 Sir Geoffrey Palmer 와 불과 며칠 전인 2월 2일 유명을 달리한 Mike Moore 그리고 국민당 전 수상 Jim Bolger도 의무투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바있다. 그리고 2019년 7월, 오클랜드 시에서 주관한 서베이서도 오클랜드 시민의 52.5%가 의무투표제를 찬성하면서 35.5%의 반대 목소리를 압도했다. 특히 25-34 연령층은 58%가 이 제도의 도입에 찬성하였다. 그럼에도 현 수상인 Jacinda Arden은 노동당 부 당수시절이던 20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제도의 도입에 반대했다. 반대의 명목적 사유는 의무투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전형적 사유였다. 같은 반대론자인 NZ Herald의 평론가 Brian Rudman의 표현에 따르면 “ forcing the unwilling to participate under threat of a fine is hardly democracy of the willing (벌금부과라는 협박을 통해 투표 참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여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유 의지에 반한다)”. 다른 표현으로 시민에게는 투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투표가 자유의지이고 권리의 문제였던가?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한 아테네는 비록 강제성은 없었지만,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의무’라고 규정했다. 현대 국가에서 납세,기본 교육, 병역이 모든 시민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인데 투표만 의무가 아닌 ‘권리’이다. 위 의무들과 투표참여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없다. 이들 의무와 투표참여는 똑같이 건강한 공동체를 구성 유지하는 등뼈 같은 사항들이다. 납세가 사회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인프라 제공을 위한 자원을 제공하고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기본 교육이 양질의 노동 인구의 존속에 필수적이듯 안정적이고 적법성을 가진 통치에 걸맞은 권위를 가진 정부를 위해 모든 시민이 투표하는 것은 건강한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state)’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방만한 리버럴들의 선택하지 않을 권리 운운은 ‘선택하지 않음 (not-choosing)은 위험한 형식의 선택(choosing)’이 된다는 것을 망각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왜 Jacinda Arden은 의무투표제를 반대하며 또 그 간 집권했던 노동당과 국민당 정부들은 유권자들의 총선 투표 참여율이 1984년 이후로 대세 하락 경향을 보이는데도 왜 의무투표제의 도입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의무투표제 도입을 했음에도 현저한 투표율의 향상을 경험하지 못한 일부 국가들의 사례 때문일까? 그 이유보다는 1984년이 바로 뉴질랜드에 신자유주의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해임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현을 위해 노조를 무력화시켰으며 정책 시행 결과 불안정한 임시직의 양산과 빈부 격차를 불러온 현 상황에서 이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 - 대부분 가난하며 그동안 낮은 투표참여율을 기록한 - 이 의무투표제로 그들의 신자유주의 반대 뜻을 선거에 그대로 투사한다면 당과 관계없이 신자유주의 바톤터치 릴레이 정치를 실행해왔던 노동당과 국민당 모두에게도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모론적으로 Jacinda Arden과 노동당의 반대를 유추 해석한다면, 예를 들어,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오클랜드에서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구에서 승리를 쟁취했는데 이들 중 Mt. Albert를 제외하곤 모두 오클랜드 평균 투표참여율 79.1%보다 낮았다: 예를 들어 Manurewa 64.51%, Manukau East 62.65% 그리고 Mangere 65.10%. 만약 강제성 있는 의무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시 벌금과 같은 금전적 손실을 유권자에게 안길 수 있는데 이 경우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볼 사람들이 바로 노동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지역구 유권자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희생자들이 된 이들에게 이런 의무투표제의 도입은 그들로 하여금 계제에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긍정적 사고전환으로 이어지게 하기보다는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 또 내 돈을 뜯어 간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노동당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국민당에서는 당연히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의 낮은 투표율이 선거 공학상 그들에게 불리할 점이 없으므로 함구할 것이다.
이런 이유 등에서 의무투표제 도입을 지지하며 제안한다. 의무투표제의 강제화에 부담을 느낀다면 당근을 통한 강력한 유인 방식은 어떠한가? 전술했듯이 뉴질랜드의 대의민주주의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전 세대들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힘들게 얻어진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그렇다면 투표일은 축제의 날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 투표에 참여한 모든 시민에게 국가(state)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제공하는 것은 어떠한가? 가령 투표소에 나온 유권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슈퍼마켓 gift card를 제공한다면 특히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가난한 유권자들과 젊은 유권자들이 벌금 때문에 마지못해 투표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즐거운 정치 참여 경험을 위해서 투표소에 나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2017년 총선 기준 유권자 수 약 357만 명. 만약 이들에게 $10짜리 슈퍼마켓 바우처를 지급한다면 $35,700,000. 지방선거를 제외하고 총선이 열리는 3년마다 우리의 건강한 대의민주주의의 부활과 존속을 위해서라면 절대 크지 않은 금액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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