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 코로나바이러스 시리즈 4

김 무인 2020. 3. 3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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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지난 한 주 몇 흥미로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3월 26일, Jacinda Ardern은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시기에 essential services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자신도 한때 슈퍼마켓 카운터에서 일했었음을 상기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인터뷰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는 슈퍼마켓 직원들에게 평상시보다 높은 급여가 지급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That will be for those supermarket operators(그것은 고용주가 결정할 문제)’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결국, Foodstuffs는 10% 임금 인상을 이 기간에 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소식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70세 이상 직원은 이들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취약 계층으로 구분됨에 따라 정부 방침에 따라 집에 머물 것을 권유받는데, 이 경우 슈퍼마켓에서는 무급휴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며 어떤 직장에서는 4주 동안 필요하지  않은 직원에게 비축된 유급휴가를 이 기간에 쓰라고 강요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소식들이 나에게는 바이러스 유행병 같은 국가 재난 시 가장 취약하며 큰 피해를 보는 계급이 노동자 계급이며 이들의 권리를 위해 국가는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현 정권이 ‘노동’당임에도. 뉴질랜드의 위 예들은 미국의 노동자/빈민 계급이 현재 겪는 고통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미국의 노동자/빈민 계급은 치료는 커녕 테스트받을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생존의 위협 속에 하루하루 살고 있다. 

 

 

(출처:NZ Herald)

 

각 국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들을 지난 2개월간 전 세계가 공유하면서 어떤 국가의 대처 방식이 효율적인지 그리고 어떤 국가는 왜 그토록 속절없이 무너지는지 실시간으로 세계 시민이 보고 있다. 뉴질랜드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관련 아직 변곡점을 지나지 않았고 한국도 생활방역 모드로 전환하기에는 잔불의 크기가 여전히 우려할만한 상태다. 중국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제2의 파장이 밀려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럽과 미국은 아직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편 일본은 누구 말마따나 아직 지옥문이 열리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현재까지 상대적으로 잘  대처한(중간 결과)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아시안 국가라는 점이다. 중국, 한국, 대만, 싱가폴 그리고 홍콩. 하지만 이들 국가 대처 방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가령 중국은 강제적 봉쇄라는 전체주의적 방식을 정보의 투명한 공개없이 실행했지만 한국은 시민사회의 협조에 기반을 둔 투명한 민주주의적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싱가폴은 또 다른 방식이다. 반면 오랜 리버럴리즘의 역사를 가진 서구 국가들은 이번 팬데믹에서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왜 이들 아시아 국가가 선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소위 전통적 서방 선진국들은 이에 반해 왜 속수무책으로 당하느냐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창궐 관련하여 왜 대부분 국가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지, 이 유행병이 지난 후 어떤 사회 경제적 여파가 우리에게 다가올지 그리고 이 유행병이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탐구의 방식은 세계 학자들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각종 미디어에 기고한 글을 번역하는 형식이다. 이번 글은 그 첫 번째로 이스라엘 사회학자 Oleg Komlik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Economic Sociology and Political Economy (https://economicsociology.org/)에 올린 짧은 글이다. 이 블로그에는 세계 학자들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의 의미에 대한 진단의 글들 중 일부를 옮긴 내용도 있어서 이것들도 번역해서 옮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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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다양한 자본주의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Neoliberalism, Varieties of Capitalism, and Coronavirus)

Posted on March 10, 2020 by Oleg Komlik

 

신자유주의가 ‘경제’는 ‘사회’에 선행한다는 개념을 구축하고 공고히 한 이후,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사회가 우선시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  (왜냐면) 그 개념은 많은 사람에 의해 비논리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위기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사회를 향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의 수행에서 각 국가 간 그리고 문화 간 차이점들; 시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 정도; 개인주의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 간 긴장; 시민 사회의 동기와 비즈니스/ 경제적 이해의 충돌, 등.

 

 

 

전국적 lockdown 시행조치를 발표하자 뉴델리의 이주노동자들이 굶어 죽으나 병걸려 죽으나 똑같다며 고향을 향한다.

(출처: ANI)

 

복지 국가와 의료시스템의 다양성을 고려했을 때 (이런 면에서 미국은 의심할 것 없이 서방 국가 중 가장 부정적인 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저임금 그리고 임시직 노동자들, 가난한 노인들, 이민자들, 그리고 케어 노동자들이다. 유행병의 음울한 구름이 걷히면 우리는 “단결(solidarity)은 심사숙고(reflection)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단결은 고통의 특정 부위(details)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키움으로써 창조된다” (Rorty 1989: xvi)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 사건 - 그 (진정한) 의미를 아직은 파악할 수 없다 - 은 앞으로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킬 것이며 우리가 인류 특히 신자유주의 운동 때문에 고통받고 뒤처진 이들을 위한 사회 내 경제의 역할에 대해 보고,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식들 관련하여 새로운 지성의 시작(intellectual beginning)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