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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경제 우선 신화를 깨트리다 (Coronavirus has shattered the myth that the economy must come first)
The Guardian, 20 March 2020
Adam Tooze
역자 머리말
이 글은 Columbia University 내 European Institute의 Director로 근무하는 Adam Tooze가 3월 20일 자로 영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창궐과 그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처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The Guardian에 기고한 내용이다. 경제에 피해 갈 것을 우려한 영국 정부가 집단면역론(herd immunity)을 핑계로 신속한 대처를 미룬 결과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글이 기고되고 3일 후 3월 23일, 영국은 3주간의 이동제한 조치를 시행했는데 최근 소식에 의하면 이 봉쇄조치가 6개월로 연장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은 3월 31일 현재(현지 시각), 감염자 25,150명(전날보다 3,009명 증가)에 사망 1,789명(전날보다 381명 증가)으로 폭증세에 있다.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 봉쇄(shutdown)는 현대 역사의 평범한 일상 중 아마도 가장 기억할만한 국가 개입(interruption)일 것이다. 이 사태는 전쟁과 비유된다. 또한 1914년(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역자 주)과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역자 주)의 일상생활 중단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쟁과 달리 현재의 사태는 동원(mobilization) 대신 동원해제 (demibilization)를 요구한다(전쟁은 사람들의 전장으로의 동원(움직임)을 요구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사람들의 움직임(동원) 대신 그 자리에서의 멈춤을 요구한다는 의미:역자 주). 병원은 최고 경보 상태에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일정 지역에 갇혀 있다. 우리는 지금 의도적으로 역사상 가장 강한 퇴보(recessions)를 자초하고 있다. (동시에) 이런 조치를 통해 우리는 20세기 후반의 위대한 상투어(platitude) 중 하나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관에 못을 박고 있다.
이전에 우리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1990년대의 공통어(lingua franca)에 따르면, 냉전 이후, 경제가 근본이며 나머지는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서구의 경제였다. 그리고 경제는 단순히 삐걱거리는 공산주의 독재를 지배한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잠재적 정치의 영역을 규정했다. Tony Blair (영국 전 수상:역자 주)가 주장했듯이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계절에 반대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
2008년(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던 해:역자 주)이 되자 우리는 이 세계에서 경제의 진짜 주인은 누구이냐는 의문에 직면했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는 보수적 재정 인기영합주의 (populism)와 신조(dogma) - 전문지식으로 포장되어 - 가 고용을 보장하고 파이를 키워야 할 필요성을 억눌렀던, 예외적이고 정치적 동기에 의해 유발된 유로화 부채 위기라는 대참사의 결과였다. 그 후 2016년 영국인의 다수는 국민투표를 통해 경제적 참사가 예견된 가운데 Brexit를 지지했다. 몇 달 후, 미국에서는 자아도취적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가 위대한 사람들과 착한 사람들(the great and the good)의 반대에도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다. 이후 영국과 미국은 시장의 절대적 거부에 대한 공포감 없이 경제적 불합리성으로 가득 찬 정책들을 추구했다. 리버럴 엘리트들은 시장 자경단(market vigilantes) 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지금 직면했다. 무뎌진 경제적 이해가 , 실제로, 우리의 반응을 좌지우지하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경제를 닫아야 하나?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는 우리의 지식은 이 바이러스가 사회의 ‘가장 비생산적(least productive)’ 구성원들을 가장 자주 죽인다는 것이다. 노동 인구의 다수는 일반적 감기보다 큰 차이가 없는 증상을 겪는다. 일반적 감기와 달리 이 바이러스는 미래의 노동자인 어린이들을 위협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나쁜 것일 수 있겠지만 단순한 경제 논리는 우리에게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바보야, 문제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정부의 실제 초기 반응이었다. 미디어의 헤드라인은 영국은 비즈니스를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기자들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Jaws에서 그의 지역구 시민이 상어에 의해 잡혀먹혔음에도 해변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시장과 총리 Boris Johnson을 비교했다. 영국 정부는 우리에게 공중보건 경험상 생산적 노동력은 면역력을 가질 것이라는 (최근까지도 영국정부가 지향했고 현재도 스웨덴/일본(?) 정부가 추구하는 집단면역이론(herd immunity):역자 주)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는 영웅적 절약주의(heroic economism)에서 이 노골적 실험이 어떻게 끝났는지 안다: 수십 만 명이 죽고,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가건강서비스) 영국의 의료/보건 시스템: 역자 주) 산하 병원들에 대한 과부하 (이전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Imperial College London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팀에서 발간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과 보건진료 수요를 줄이기 위한 비약품적 개입(NPIs)의 효과 (Impact of 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 (NPIs) to reduce COVID19 mortality and healthcare demand) 리포트의 결론: 역자 주) 그리고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허겁지겁 이 정책을 철회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되자 계산법이 일순간 달라진 게 명확했다. 물론 병들고 나이 든 사람은 죽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죽는가가 문제다. 치명률의 급격한 증가는 비록 그 것이 기저 질병을 가진 ‘“취약(vulnerable)” 계층에 한정된다 해도 실존적 위협이다. 우리의 병원들에서 전개될 종말론적 모습들 역시 그렇다. 초기 이 모습들은 그럴듯한 불확실성의 커튼에 가려졌을지 모른다(의심할 것 없이 NHS와 BBC는 치료 일선으로부터 현장 보고를 위한 프로토콜 작업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와 우한으로부터 날아온 소식과 이미지들만으로도 상황이 나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변한 환경에 직면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한다든가, 봉쇄를 해야 한다든가 더 나아가 쇼핑을 포함한 대부분의 필수적 개인행동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로 변했음을 인지하지 못해서 우리가 멍청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경제가 위기를 만든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 서식처를 만드는 것은 중국 경제의 끝없는 팽창과 전통적 식습관과 현대 도시 삶의 결과적 조합이다. 전염을 가속하는 것은 세계화된 운송시스템 덕분이다. 중환자실 병상 수와 산소호흡기의 비축량을 결정하는 것은 비용 계산이다.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백신의 개발은 약품개발의 상업적 논리에 달렸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발기부전 정도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할 때도 영국은 여전히 정상적 비즈니스 활동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치명적 지연을 초래했다. 봉쇄는 비용을 초래한다. 그 누구도 이 조치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과 죽음에 대한 끔찍한 예상에 직면해서는 그 누구도 대안이 없음을 깨닫는다.
경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당신이 이 사태가 생사가 걸린 문제임을 깨달으며 정치적, 지적 그리고 존재론적 장애를 극복했을 때이다. 그리고 이것은 복수를 동반한다. 잘 조직된 아시안 국가들에 의해 밝혀진 극복 논리는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정상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엄격한 격리를 실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이미 조금씩 회복 중이다.
서구의 경우 유행병의 규모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태라 이제 우리의 대응은 전면적 봉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조치는 경제관리라는 거대한 도전을 수반한다. 영국과 미국 모두 보수 정권이지만 모든 금융 재정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몇 주 이내에 2008년의 조치들과 비견될만한 규모의 거대한 국가 개입을 볼 것이다. 그 조치들은 충격을 다소 완화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경제를 얼마 동안 멈출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어려운 결정을 앞둔 지금, 우리는 최소한 한 종류의 자유를 획득했다. 1990년대의 ”경제”가 우리 정치를 관장하는 초자아(regulating superego)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원대한 이념은 산산이 부서졌다. 지난 몇십 년간의 경험을 고려하면 우리는 다음 질문에 절대 피곤해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제적 제약이 실제이고 어떤 제약이 상상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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