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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아랫글을 통해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Judith Butler는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현재 미국 내 사회적 약자들이 큰 희생을 치르고 있고 앞으로 더 큰 희생이 예상되는 가운데 같은 시기에 진행 중인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후보 중 한 사람인 민주당의 Bernie Sanders가 주창한 보편적 보건진료 정책의 도입 필요성을 설파하며 보건진료 부분에서 만큼은 자본주의를 벗어나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한계를 노출하다 (Capitalism Has its Limits)
Verso, 30 March 2020
격리의 절대적 필요성(imperative)은 팬데믹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글로벌 상호의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동시에 일어난다. 한편에서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공동주택으로부터, 혹은 개인 기숙사로부터 떨어져 사회 접촉을 줄이는, 상대적 격리 상태로 들어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국경이라는 경계를 신속하게 넘나드는 바이러스와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가구 혹은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갈수록 홈리스 혹은 유랑자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가구(the household)”는 보호의 공간으로 간주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국가 전략은 형성되었다가 철폐되기를 (반복하면서) 혼란스러운 공개 방식(public forms)으로 나타난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는 문제가 우리 대통령(Trump: 역자 주)에게는 시장(markets)이 결정할 비용-이익의 문제로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평등, 글로벌 상호의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의무 등에 이번 팬데믹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우리를 공평하게 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하고, 절박한 위협의 세상에 살게 하는 등 위험에 똑같이 우리를 노출한다.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움직이는데,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바이러스는 움직이며 전염을 시키는 방식으로 지구촌 인류 공동체가 똑같이 위태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 국가 혹은 지역의 사전 준비 실패 (이와 관련 미국은 최악의 사례일 것이다), 국가 정책의 강화와 국경의 폐쇄(종종 공황적 외국인 혐오증을 수반한다) 그리고 글로벌 위기를 이용하려는 기업가들의 도래 등 이 모든 것들은 급격한 불평등,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가의 착취가 이 팬데믹 환경 내에서 자신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방법을 신속하게 찾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의 보건 정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눈에 띈다. 우리가 이미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효과적 백신의 생산과 마케팅이다. 재선을 겨냥해서 정치적 점수를 획득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트럼프는 이미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독일 제약회사 Cure Vac으로부터 앞으로 개발 예정 백신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권리를 살려고(현금으로) 작업 중이다. 기뻐하지만은 않았을 독일의 보건부 장관은 자국 미디어에 미국으로부터 오퍼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독일의 정치인 Karl Lauterbach는 “개발 예정인 백신에 대한 미국의 판매 독점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한도가 있다.” 나는 그가 “독점적 사용(exclusive use)”에 반대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독점권이 독일에만 주어진다 해도 마찬가지로 반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보다 최근에, 트럼프는 제약유통회사인 Gilead Science와의 거래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의 치료제로서의 잠재성이 있는 약품 Remdesivir의 독점적 권리 행사를 인정했다.
Walmart와 CVS(미국 약품 유통체인: 역자 주)를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백악관으로 초청하였는데 이는 트럼프가 새로운 약품 치료제가 어떻게 개발되는지 잘못된 이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공공 보건으론 혼동했음을 보여준다. 불과 며칠 전, 트럼프는 국가의 재정적 건강이 진정한 건강이기에 유일한 측정 수단은 Wall Street임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로 치명률이 증가하는 위험이 있더라도 “business as usual”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그에 관점에서는 정당한 것이다. 이것의 명확한 의미는 경제가 부활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들(vulnerable people) - 노인, 홈리스 그리고 기저 질환을 가진 사람들 - 이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시장(markets)을 위한 것이다.
What is Trump thinking? 을 다시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질문은 절대적 분노의 상황에서 수도 없이 던진 질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분노가 비윤리적 혹은 범죄적 자기 권력의 확대(self-aggrandizement)의 새로운 경우마다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트럼프가 잠재적 백신의 구매에 성공하여 그 사용을 오직 미국 시민에 한정한다면 그는 미국 시민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만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끼며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미국 대중들은 진정으로 이런 종류의 민족주의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이 백신이 들어왔을 때 오직 부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시장의 원리(market rationalism)와 미국 예외주의와 맞물려 이런 진절머리나는 사회적 불평등에도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트럼프는 대다수 국민이 백신이 어떻게 개발되고 배포되어야 하는지는 자유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트럼프는 과연 그의 머리 세계 속에서 지금의 세계 보건 이슈는 시장의 원리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 나머지는 그가 상상한 세계의 영역 내에서 살고 있다는 그의 생각이 맞는 것일까? (백신 사용에서) 국적에 기반을 둔 이용 제한이 설사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자들과 완전 보험에 가입한 자들이 백신이 상용화되자마자 확보를 위해 달려가리라는 것을 안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심지어 유통 방식을 통해, 오직 소수에게만 백신 구매가 가능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속적이며 갈수록 증가하는 불확실 상태에 방치되어도 말이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바이러스로 하여금 차별하게 한다. 바이러스 자체는 차별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민족주의,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증 그리고 자본주의의 권력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차별한다. 내년에 우리는 일부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려는 고통스러운 시나리오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으로부터 지켜줘야 할 사람(죽었을 때 슬퍼할 가치가 있는)들과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줘야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죽어도 슬퍼할 가치가 없는)들을 구분하는 가짜 차이점들을 다시 쓰는 방식을 통해 실행될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이 미국 대통령 후보 레이스에서 Bernie Sanders가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예상은 Biden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데 이는 이 시기에 비극적 뉴스다. 왜냐하면, Sanders와 Warren 둘 다 ‘모두를 위한 의료(Medicare for All)’,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의료 혜택을 보장하는 포괄적 공공 보건진료(comprehensive public healthcare) 프로그램을 지지한 데 반해, Biden은 한 때 노인들을 위한 공적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 포괄적 공공 보건진료 프로그램은 환자를 정기적으로 버려두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시불을 의무화함과 동시에 보험 가입자, 보험 미가입자 그리고 보험 가입 불가능자 간의 잔인한 수직적 서열을 영속화하는 시장 주도, 개인 보험회사들의 종식을 가져올 수 있다.
Sanders의 사회주의적 보건진료 접근 방식은 좀 더 정확히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경선 초기 탈락한 Elizabeth Warren이 내세운 것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 Sanders에게 있어 의료 혜택은 “인권(human right)”으로 모든 사람은 필요할 때 적정 보건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인권은 인간 개개인을 출발점으로 놓는다. 그런데 왜 이 보건진료(health care)를 사회적 의무로 이해하지 않는가? 이 개념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 Sanders와 Warren은 미국 국민에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보건진료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적법한 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접근이 거절되는 한편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백신에 접근한다면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세상에 먼저 동의해야 한다.
내가 지난 캘리포니아 예비 선거에서 다른 민주 당원들과 함께 Sanders에게 투표한 이유 중 하나는 Warren과 더불어 우리의 세상을 다시 상상하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세상은 마치 급진적 평등을 갈망하는 집단의 명령 같았으며, 그 세상에서는 우리 삶에 필요한 물질, 의료 진료 포함,이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금전적 수단을 가졌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된다. 이 프로그램은 보편적 보건진료(universal health care)를 지향하는 다른 국가들과 연대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평등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초국가적 보건진료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여론 조사 결과 미국 대선은 Trump와 Biden의 각축으로 좁혀진 현재, 우리 일상생활을 억제하는 shutdown이 실행됨으로써 홈리스, 보험 비가입자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극한의 위험에 놓였다. 보건 정책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며 의료혜택을 받을만한 자들과 그렇지 못해 쉽게 병과 죽음에 몰린 자들로 사람들을 구분 짓는 시장 주도의 보건진료 시스템의 해체에 대한 우리의 꿈은 이렇게 짧게 끝났다. 우리는 Sanders와 Warren이 이와 같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가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나 생각하고 평가하는 걸음을 시작했는지 모른다.
비록 Warren은 더는 후보도 아니고 Sanders도 반등할 것 같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특히 지금,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같은 사람으로서 모든 생명을 마치 그들이 평등한 가치를 가진 것처럼 대하는 것에 왜 여전히 반대하는가? 왜 일부 사람은 트럼프가 모든 사람들에 앞서 미국인 생명을 먼저 지켜 줄 백신을 확보하려는 뉴스에 열광하는가? 보편적 공공 의료라는 명제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다시 불러일으켰으며 이 명제를 사회 정책과 공적 지향점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대유행병의 시기에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이 꿈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이용하기보다는 우리 앞에 펼쳐질 긴 투쟁이라는 사회운동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자본가 “현실주의자(realists)”들에 의해 조롱받고 거부된 이 용기 있고 배려심 깊은 꿈은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만큼 충분히 노출되면서, 갈수록 많은 사람이 - 어떤 사람에겐 처음으로 - 바뀐 세상을 염원하고 있다. 희망적으로 우리는 이 염원의 불씨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Trump가 부활절 기간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lockdown 조치의 해제를 시사하면서 바이러스가 기승이 예상되는 지금 말이다. Trump는 소수를 위한 잠재적 금전적 이득이 그가 국가적 건강이라는 명목하에 받아들이고 멈추게 할 의지가 없는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사망자 수의 증가를 보상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보편적 보건진료에 대한 사회적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트럼프의) 도덕적 질병과 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두 상대를 동시에 상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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