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우리는 왜 혁명이 필요한가 - 대안시리즈 2

김 무인 2020. 4. 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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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이전 포스팅에서는 막시스트 혹은 사회주의자의 현재 뉴질랜드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전개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옮겼다. 이번 포스팅은 뉴질랜드 자체 사회주의자 모임인 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sation Aotearoa(ISO Aotearoa)에 게재된 기고문의 번역이다.  이 기고문은 미국의 사회민주주의자 Bernie Sanders가 경선 포기를 선언한 4월 8일 이전인 3월에 발표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버니 샌더스가 2016년에 이어 올해에도 경선에서 실패한 원인이 미국 민주당이라는 기존 자본가의 정당 틀을 이용해서 사회주의 정책을 내부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계획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이런 사회주의자 혹은 Marxist의 인식은 탈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세계의 건설은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에도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인지했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Neoliberal capitalism)의 모순과 적폐는 이번 바이러스 위기 덕분에 그대로 민낯을 드러냈다. 많은 지구인은 이제 이구동성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Neoliberal capitalism)는 더는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Neoliberal capitalism)를 벗어나 ‘자본’ 혹은 ‘이익’보다는 ‘사회’가 제일의 가치가 되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자본가들의 폭력적 저항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고 이해한다. 기득권을 가진 자본가들의 저항은 노골적 폭력 행사를 불사하기에 기존의 자본주의 정치 제도를 이용한 변화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역사는 이를 보여준다고 사회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왜 혁명이 필요한가 (Why We Need Revolution)

 

Cory Anderson

 

18 March 2020



혁명은 사회 변화의 필요한 부분이다. 영국 내란,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그리고 1848년의 유럽 혁명 기간, 떠오르는 자본가 계급은 천 년 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봉건 귀족으로부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세계의 다른 지역, 가령 남미,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제국의 굴레를 제거하고 독자적이고 현대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은 필요했다. 2019년에 우리는 거의 모든 대륙에서 전 세계적 주요 봉기를 목격했다. 사회주의자들에게 혁명은 이중 필요성을 가진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소위 민주적이라고 하는 현대의 지배계급은 결코 권력을 자발적으로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혁명은 오래된 사회구조를 새로운 구조로 대체하는 사회적 변혁의 필요한 부분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뉴질랜드와 같은 서구 민주주의에서는 혁명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취급하기 쉽다 - 오직 과거 시대 혹은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적 정권하에 시달리는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공간은 지극히 제한되어있다. 자본주의는 공장,사무실,광산같은 사회의 생산자원들이 개인에 의해 소유되고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된다. 자유시장에서의 상품의 교환을 위해 법 앞의 평등은 필요하고 따라서 공공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자본가들은 일정 정도 용인한다.

 

그러나 이면은 자본가들은 그들이 원할 때 그들의 소유물을 처분할 수 있고 이익을 빼갈 수 있다. 이 것이 자본주의하에서 민주주의를 한계짓는다: 우리는 3년마다 국회의원을 선출하지만, 혹은 심지어 지역 시의원도, 우리는 누가 우리의 사장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가 일하는 회사가 어떻게 운영이 되어야 하는지 혹은 이익이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있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와 일반인들이 자원의 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사유재산의 기본전제와 자본주의의 기반인 시장 교환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민주주의는 제한되어 적용된다. 국가의 전 분야 - 경찰 군대 그리고 대민 업무 - 는 어떤 민주적 절차 없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는 노동자와 가난한 자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정부에 행사한다. 사업자들은 정당과 우익 로비그룹에 큰 기부를 하고 미디어와, 가장 중요하게, 엄청난 규모의 사회 경제적 자원을 조정한다. 정부 내에서는 재무부(Treasury)와 중앙은행(Reserve Bank)은 비즈니스와 긴밀한 연계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부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 정책입안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좌파 정부가 사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정책을 시도하려고 할 때 자본가들은 그 시도를 무산시키려는 동원 가능한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를 동원해 정부의 시도를 평가절하한다거나 해외로 자금을 유출해 환율위기를 촉발시킨다. 

 

이런 수단을 통해서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자들을 효과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관리자로 변절시킨다.  최근의 예는 그리스 Alexis Tsipras의 급진좌파 정부다. 궁핍의 기간을 종식하기 위해 2015년 당선되는 Tsipras의 SYRIZA 당은 순진하게 그리스의 채권자들이 그리스 사람들의 의지를 존중하고 정부 부채의 삭감에 응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의 협상시도에 대해 EU로부터 간단히 “no”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 그리스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궁핍(austerity)에 반대했음에도 - Tsipras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더 혹독한 조건의 궁핍 “양해각서(memorandum)” 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간격을 두고 Tsipras와 SYRIZA는 급진적 좌파로부터 자본주의 프레임 내에서 궁핍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변했다.

 

만약 다른 모든 것들이 실패하고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을 시작하면 자본가 계급은 민주주의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노골적으로 폭력(force)에 의존할 것이다.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는 말한 바 있다. “자본가들이 의회의 사회주의 결정에 복종하여 조용히 그들의 재산, 이익 그리고 착취권리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친 짓이다.”

 

따라서 호주에서는 Gough Whitlam이 이끌었던 온건 개혁 노동당 정권이 커지는 불만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을 때 우파는 총독 John Kerr와 공모했다. 결과적으로 Whitlam은 Kerr에 의해 1975년 해임되고 우파 Liberal Party가 권력을 잡으면서 잠재적 반대편을 억누르기 위해 군대를 대기시켰다.

 

칠레의 경우 탄압은 1970년대 훨씬 악독했다. 급진적 개혁가 Salvador Allende는 1970년에 민주국가에서 첫 번째로 당선된 Marxist였다. 이에 자본가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 속에서 1973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키고 수만 명의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1970년대 칠레와 호주의 개혁 정부를 제거한 것은 자본가들의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운동이 그들의 재산권과 이익에 위협을 주게 되면 자본가 계급은 그들의 지배를 포기하는 대신 민주주의 껍데기를 기꺼이 벗어버린다. 



노동자 계급의 육성(Raising Up the Working Class)

 

혁명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단지 오래된 지배계급을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사회주의 사회를 효율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제도와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즉 노동자 계급을 지배 계급의 위치에 올려놓기 위함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아마도 군대의 폭력이나 더 나아가 시장의 강압적인 힘도 아닌 자본주의의 “살아있는 현실(lived reality)”일지 모른다. 매일 우리는 직장에 나가야 하고, 청구서 대금을 지급하고, 렌트를 내고 직업을 위해 다른 노동자와 경쟁하는 것 같은 현실과 직면한다. 매일 우리는 직장 사장에게, 법에 심지어 부모와 교사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 - 아니면 대가를 치른다. 평범한 시간 동안 평등주의(egalitarian) 사회는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내재적으로 불안정하며 주기적으로 위기에 빠진다. 위기는 투쟁을 낳고 자본주의 삶의 정상적 기능을 저해한다. 자본주의의 인정사정없는 경쟁 세계에서 회사들은 임금을 제한함으로써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려 한다. 이 시도는 궁극적으로 자본가 오너와 관리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의 이해 간 충돌로 이어진다.

 

집단적 투쟁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우선순위를 가져다준다.  서로 먼저 “기름장대에 오르기(climb the greasy pole)’위해 노동자들끼리 다투는 대신 혹은 공장 생활의 단조로움 대신 노동자들은 사장에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 같이 조직을 만드느냐는 급선무에 직면한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이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심지어 자본주의하에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전부가 아니라면, 민주적 권리와 제도들이 이런 식으로 탄생했다. 보편적 투표권, 민주적 노동조합, 노동법 모두 노동자들 투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제거하는 혁명 없이는 심지어 최고 개혁의 개혁적 잠재력도 실종될 것이며 잠재력 누수에 이어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된다. 이런 과정을 완수하고 새로운 사회를 영구화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

 

지난 세기의 역사는 혁명이 어떻게 민주적이고 평등한 노동자계급 운동의 길을 열었는지에 대한 많은 사례를 제공한다. 대부분 역사책에서 가르친 것과는 반대로, 러시아 혁명의 공산주의자 혁명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진정한 민주적 대안을 제공했다. 친자본가 정치인들과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의 구성을 주장하는 동안, 레닌과 볼셰비키 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급진파는 지속해서 선거일을 이후로 미루면서 공장 평의회(councils)- 러시아명칭 soviets - 의 대중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레닌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기반이 될 사람들은 상류 지주 계층과 공장 소유주의 이해에 지배된 의회가 아닌 바로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전 차르 제국에서 민주주의는 내전의 압력, 침공 그리고 고립으로 소멸할 때까지 짧은 기간 번성했었다.

 

단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20세기 전반에 걸쳐 반기를 든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민주적 공간을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다수에 걸쳐 노동자들을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들을 창조했다. 가령 독일 혁명 기간인 2018년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1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노동자 평의회(worker’s council), 이란 혁명 기간 만들어진 노동자 Shoras(council 혹은 soviet와 비슷한 개념:역자 주), 혹은 1970년대 유럽에서 벌어진 공장 점거 혹은 2004년 아르헨티나 부채 위기 기간 자치경영 위원회(self-committees); 노동자 계급투쟁과 민주주의는 같이 손잡고 나아갔다.

 

자본주의 철폐는 이 같은 혁명을 요구한다 - 자본가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빼앗아(seizes) 노동자 계급에 전달해주는 민주적 혁명. 혁명 없이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자본가들이 1974년 칠레에서 했던 것처럼 이 노력을 분쇄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고, 억압과 복종의 오랜 굴레를 벗어나고,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