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팬데믹 이후 사회에 관한 역사의 교훈 - 대안 시리즈 4

김 무인 2020. 4. 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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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아래 기고문은 The Guardian에 실린 글로 이전 포스트 ‘팬데믹 이후 세계의 모습은?’에서 인용된 글 중 하나이다. 글쓴이 Richard Power Sayeed는 1990년대 New Labour와 영국의 역사를 다룬 1997: The Future that Never Happened의 저자다. 이전 포스트의 글쓴이 Al Jazeera  정치평론가 Marwan Bishara와 이 글의 저자가 공통되게 지적한 것처럼 지금 세계는 극우파적 움직임과 좌파적 움직임이 이후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이다. 

 

아직까지는 각국 정치 현장에서 공개적 대중 활동을 하는 포퓰리즘 민족주의 정치인들 덕분에 좌파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좌파운동을 뒷받침하는 노동자와 대중의 집단적 결속은 위기 사태가 진행되면서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가시화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 힘겨루기 결과의 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세계 인민은 팬데믹 이전  신자유주의 시절보다 더 혹독한 궁핍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팬데믹으로 드러난 열악한 의료인프라와 의료시스템의 개선에 자금을 투여하는 대신 오히려 경제 부흥 명목으로  공공 섹터의 자금 지원을 줄이고 그 자금을 사적 기업의 활성화에 투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에서 인용된 링크는 원저자의 삽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더 공정한 사회 건설에 대해 역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What history can teach us about building a fairer society after coronavirus)

 

Richard Power Sayeed

 

만약 노동자가 단결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Last modified on Sat 18 Apr 2020 15.46 BST

 

14세기 중반,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약 1/3을 죽이며 우리가 지금  “봉건주의(feudalism)”라고 부르는 고착화된 사회 계급을 파괴적으로 해체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변화가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변화는 William Caburn과 같은 사람들이 이 위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영국을 휩쓸고 지나간 2년 뒤 이 Lincolnshire 지방의 농장 쟁기질 임금노동자는 “당시 일당을 받고 일하는 것을 거부”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그럴 권리가 없음에도 땅 주인에게 땅을 갈 노동자가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했다.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 소작농들도 임대료 인하를 집단으로 요구했다. 한 지주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부분의 소작농이 갑자기 동시에 체납을 시작했는지 볼 수 있다. 거의 확실히 그들은 비밀스럽게 소통하고 협력했음이 틀림없다. 

 

이전에도 지주에 대한 국지적인 시위와 봉기가 있었지만, 흑사병 이후에 이것들은 더 빈번해졌다. 1381년의 소작농 반란은 가장 큰 규모였지만 과욕으로 패배했다. 지배 귀족들은 처음부터 소작농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잔혹한 새 법은 노동자들의 임금 향상 요구를 차단하려고 했으며 심지어 다른 계급 간 옷의 재질에 대해서도 특정했다.

 

그러나 소작농 운동은 살아남았다; 사실은 번창했다. 1350년과 1400년 사이 일부 지주들은 임대료를 절반 이상 인하했다. 같은 기간, 농업 노동자 경우 남자는 약 50% 그리고 여자는 100% 임금 인상이 있었다.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서 영국에서 거의 모든 임대료는 봉건적 의무(가령 지주의 군대 복무:역자 주) 대신 현금으로 지급되었는데 이는 얼마나 많은 농노가 그들의 자유를 샀는지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5세기 동안 소수의 해방 소작농들만이 자신들의 사적 재산을 형성했고 노동자 계급 대부분은 비좁은 도시 슬럼 속에 살면서 위험한 일을 해야만 했다. 20세기 초가 되자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는 급진화되었는데 첫 번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지배계급의 실패에 따른 것이며 두 번째는 수천만 명의 인명을 빼앗아 간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다. 

 

이 유행병에 타격을 입은 많은 나라의 급진파와 개혁주의자들은 변화를 요구했고 각 정부는 대중보건의 혁신을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복지국가 건설의 첫걸음이 떼어졌으며 이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1930년대의 대담한 개혁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개혁들 덕분에 공공 주택, 어린이 돌봄, 자녀수당,노후연금 그리고 다른 사회적 안전보장이 제공되었다. 다시 한번,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치적 조직활동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기간 스페인의 경험은 조직활동 혹은 변화가 반드시 진보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감이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했을 때(사실 “스페인” 독감은 부적절한 표현이다) 스페인 정부의 대응은 그 반동적 목적을 반영했다. 스페인 팬데믹 발발의 역사를 통해 Ryan Davis는 정치인, 의사 그리고 저널리스트가 어떻게 “위생적 독재”로 비위생적 대중들을 통제하려고 했는지 보여준다. Galicia(스페인 북서부 지방:역자 주)에서 경찰은 의사를 대동한 채 가정을 방문했고 Murcia(스페인 남동부 지방;역자 주)에서는 대중보건 위반 사례를 고발하기 위해 청년 조직들이 만들어졌다.

 

스페인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운동이 약화하면서 스페인 사회의 군대화는 중간의 짧은 공백이 있었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독재정치의 사회적 발판을 형성했다. 

 

최근 몇 주 사이 일부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은 각국 정부들이 좀 더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소작농의 사례는 이 변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줌과 더불어 스페인의 역사는 bad guy가 이 위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유로 칙령에 

라 통치권을 획득한 헝가리 수상 Viktor Orbán을 보라. 

 

보수파들은 이미 섬세하게 이 팬데믹 피해의 잔혹함에 관한 책임을 정부 대응의 실패로부터 개인적 “covidiots(covid와 idiot의 합성어로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공중보건이나 안전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역자 주)”, 이민자 혹은 다른 나라들로 옮기는 작업과 경기 침체에 따른 궁핍(austerity)으로 회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부를 가진 나라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시킬 수 있지만, 영국 보수당이 그럴 가능성은 없다. 영국 노조에 대한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정치인들과 기업주들로 하여금 양보를 이끌어 낼 급진적 행동과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유화 제스처를 어떻게 잘 안배할 수 있느냐는 “Goldilocks” 전략(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나오는 일화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의 죽을 비유함:역자 주)이 그것이다.

 

좌파들은 집단행동을 위해 가능한 모든 기관과 제도들을 다시 재건해야 할 것이다. Living Rent와 같은 세입자 노조 회원들은 록다운이 시행되자 렌트 삭감을 요구했다: 만약 랜드로드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모든 세입자가 어떻게 대항하는지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면 세입자가 얻게 될 - 록다운 후에도 유지하는 - 권력을 상상해보라.  (여기에 스코틀랜드를 위한 조언 그리고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위한 조언이 있다.)

 

상호 도움(Mutual Aid) 단체들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것에 기뻐하는 이웃들로 구성된 뛰어나게 다양하고 유능한 네트웍을 만들었다. 팬데믹이 종료되면 이들이, 예를 들어, 지역 기업들에 생활 임금(living wage)을 지급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지주의 노동력에 대한 필요를 이용한 소작농의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직 우리가 함께 싸울 때만이다. 이럴 때 변화는 가능할 수 있지만, 이 변화가 진보를 자동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페인의 반동주의자들이 10여년간  독감의 창궐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라. 정치적 의사 결정이 Twitter, Whatsapp 그리고 Zoom에서 빛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집단으로 그리고 지금 당장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